산문시
이런 날이 있습니다.
하루가 유난히 느리게 흐르고, 특별히 바쁜 일도 없는데 몸이 피곤해지는 날 말입니다.
이런 날엔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고, 그저 가만히 앉아 숨을 고릅니다.
명상이라고 부르기엔 거창하고, 쉼이라 하기엔 생각이 조금 깊어지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러다 보면 계획은 뒤로 물러나고 방향이 먼저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야 할 일의 목록이 아니라, 가야 할 목적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 목적이 방향을 갖기 시작하면, 몸은 자연스럽게 움직입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요.
욕심이 많아질수록 감성은 밀려납니다. 이성이 앞서 나설수록 마음은 한 발짝 멀어집니다. 어떤 이는 그것을 현명한 선택이라 말합니다. 효율적이고, 합리적이며, 실패가 적은 방식이라고요. 하지만 모든 선택이 그렇듯, 하나를 채우면 다른 하나는 비어 버립니다. 욕심과 이성이 앞설 때, 감성은 늘 그 자리를 내어 줍니다.
그래서 가끔은 추상화를 감상합니다.
분명한 답이 없는 작품 앞에서 화가의 의도를 찾듯, 숨어 있는 메시지를 더듬어 봅니다.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느끼는 쪽으로 감각을 조금씩 늘려 봅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연습은 그렇게 시작됩니다.
그런 시간은 머릿속에 날이 선 생각들을 서서히 둥글게 만듭니다.
말이 되기 전의 생각을 가라앉히고, 판단으로 굳어지기 전의 감정을 풀어 줍니다.
그렇게 다듬어진 마음은, 쉽게 흩어지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국 마음의 모서리를 다듬는 일이기도 하니까요.
그 과정을 방치하면, 별것도 아닌 일에 쉽게 날을 세웁니다. 사소한 감정이 뾰족해지고, 생각은 말이 되어 상대를 찌릅니다.
독설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지 않습니다. 갈등은 돌보지 않은 시간의 끝에서 서서히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날이 찾아왔습니다.
늘 곁에 있지만 문득 당신이 그립고,
멀리 있지 않은데도 마음이 닿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요. 이런 날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