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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그어놓은 선 너머의 성찰

감탄할 정도의 집념을 가진 학자의 삶을 따라가다가 갑자기 비극을 마주한 느낌이었다. 19세기의 미국의 생물학자(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 (1851~1931)의 삶과 연구를 추적하고 오류와 독선에 관한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야기다. 과학 전문기자인 룰루 밀러의 데뷔작인 이 책은 통해 전 세계 독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워싱턴포스트, 시카고 트리뷴, 스미소니언, 내셔널 퍼블릭라디오 등이 이 책을 '올해의 책'(2021년)으로 선정했다.     


사랑을 잃고, 깊은 혼란 속에 빠진 저자 (룰루 밀러)가 무언가 다시 일어설 계기가 필요할 때, 천재 과학자로 알려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연구를 통해 어떤 희망과 답을 찾고 싶어 했다. 당대의 어류 1만2,000여 종 중 2,500여 종의 물고기를 발견한 어류학자이며 미국 스탠퍼드대학 초대 총장을 역임한 조던은 모든 생명체의 연결과 그 관계를 밝히는데, 평생을 바쳤다. 


 어린 시절 밤하늘을 자주 바라왔던 조던은 별들에 질서를 부여했고 ‘별들의 지도’를 완성했다. 자신의 이름에 ‘스타’를 집어넣을 정도였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자연계에 질서를 부여하려 했던 그는 지구의 혼돈에서부터 그것과 동식물과 어떻게 연결되는 지를 찾는 과학적 여정을 보여준다.  


 분류작업을 통해 "강자가 오래 살아남고 더 우월하다"라는 잘못된 신념은 잘못된 우생학자의 길로 인도했다. 나아가 빈곤과 타락, 게으름 등 인간의 특징을 생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다고 했다. 독자들은 과학에서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집념에 감탄하다가 갑자기 천재 과학자의 오류와 독선을 마주한다.     


 인간이 자연에 부여한 '이름'과 그 너머의 '실존의 가치'에 대한 성찰은 지금 우리가 믿고 있다고 생각하는 삶의 질서에도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인간 편의로 그어놓은 선 너머의 복잡성과 미묘한 차이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조던이 미묘한 차이를 가진 어류를 하나의 단어 아래 넣는 오류에 대한 저자의 은유적 문장이다. 책 출간 이후 학생들과 졸업생들 직원들의 항의로 스탠퍼드대학과 인디애나대학은 조던의 이름이 붙은 건물의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고 하니 이 책의 영향력 또한 대단하다.     


저자는 자연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방식을 이야기하며 '민들레 법칙'을 소개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잡초처럼 보이지만, 약초 채집가에게는 약재로, 화가에게는 염료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생학 관점에서는 한 생명이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대체하지 못할 우주와도 같고 실제적이고 매우 중요하다는 화두를 이 세상에 던졌다.     



소개도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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