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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준 Nov 18. 2016

나는 다시 꿈꾸다.

글 7

내가 나를 못 마땅해할 때가 종종 있다. 남의 기대치만큼 내가 잘 나가지 못한다거나, 나의 기대치만큼 내 삶이 높지 못하기에 스스로를 더 다그친다. 내가 생각하는 모습은 지금 보이는 그것과는 다르기에, 현재 나는 괴로운 기대치 위반자이다. 지금까지는 꿈은 있는 대로 크게 꾸는 '나'가 살아가는 '나'에게 독려했다면, 어느새 삶에 지친 '나'가 꿈꾸는 '나'에게 이제 그만 나가 달라고 부탁하고 있다. 둘 중 누구의 손도 들기 주저하는 나는 어디에 서있는 것인가.


처음은 쉬웠다. 큰 꿈을 그려보고, 생각을 칠하고, 고민하는 그 자체의 즐거움에 많은 것을 그렸다. 그리고 그것에 취했다. 간섭받기 싫어서 쌓은 담들이 어느새 내 눈을 가리고, 높게 쌓인 담들이 내가 이룬 꿈인 것 마냥 착각하고 도취했다. 시간의 풍파가 눈 앞의 것들을 가차 없이 깎아내고, 마침내 진실과 대면했을 때. 내 꿈은 오아시스가 아닌 신기루였다. 타들어가는 갈증에, 밀려오는 허망감에 나를 더 채찍질했다. 나는 사막 속 길을 잃은 순례의 카라반, 꿈을 싣을 채 방황이다.


어느새 타협한 현실. 목적성도 방향성도 없이 도착한 이곳에 앉아, 한껏 담았던 것들을 무심코 바라본다. 나는 정말 많이도 담았구나. 한때는 손에 닿았던 것들부터 내가 담았나 싶던 것들까지. 펜을 들고 있으면 작가가 되고 싶었고, 요리를 할 때면 셰프복을 입고 일하는 모습을 그렸다. 축구를 할 때엔 축구선수가 꿈이 되었고, 전공을 선택 후엔 회계사가 꿈이 됐다. 그렇게 나는 수많은 나를 그리며 이 곳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는 정리할 시간. 


모든 게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그때와 모든 걸 잃어버린 듯한 지금. 문득 돌이켜서 생각해보니 나는 계속 꿈을 꾸는 그 열정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펜(pen)이 팬(pan)으로 변하고, 발로 차던 공(ball)이 손으로 쓰는 공(0)으로 변해도 그때에 나는 변함없이 꿈을 꾸며 앞으로 걸었다. 이제와 보니 하나도 의미 없는 것이 없더라. 하나같이 행복했고, 그것들이 모여 내가 됐구나. 나는 꿈들을 바람에 날려 버린 것이 아니었다. 내 꿈들은 마모(磨耗)가 아닌 퇴적(堆積)임을, 층층이 쌓인 것들이 나만의 무늬임을 깨닫는다.


어리석게도 그 즐거움을 잊은 채, 당장 보이는 것과의 괴리감에 몸서리치고 자책했다. 이제 다시 일어설 시간. 지쳐 앉아 있던 '나'에게 꿈꾸는 '나'는 손을 내밀고, 나의 시간은 다시 흐른다. 더 이상, 나의 기대치는 꿈의 완성에만 걸려있지 않다. 꿈 꾸며 살아가는 '나'는 미완의 그것까지 모두 내 것임을 알고 끌어안는다. 꿈의 목적성과 방향성의 회복은 그렇게, 나를 다시 걸어가게 한다. 다시 나아간다.


이윽고 별 빛이 하나둘 점멸하는 이곳은, 낮보다 아름다운 사막의 밤.

그리고, 나는 순례의 카라반.

이제 다시 꿈들을 담으며 가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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