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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설 Oct 14. 2022

13편|열아홉 살 게스트하우스 사장님 Ⅳ 오픈과 실패

2014년, 열아홉

우여곡절 끝에 만천하에 알려질 수 있도록 기회를 얻은 우리의 게스트하우스 ‘비빔’

게스트하우스 ‘비빔’ 상호의 탄생 비화? 사실 게스트하우스 이름으로는 서정적인 단어를 사용하고 싶었는데, 생각나는 족족 검색해보니 이미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호였다. 생각 회로가 느려진 그 순간, ‘비빔’이란 아이디어가 등장했다. 전주의 상징 비빔밥과 연상되기도 하고, 비빔밥 안에 들어가는 다양한 재료들이 섞여 하나의 맛을 내듯이 여러 사람들이 모여 비벼질 수 있기를 소망하며 결정되었다. 


그렇게 오픈일자를 정하고 영업 준비를 위해 홈페이지 용도로 쓸 네이버 카페를 개설하고 전화번호를 게재하자마자 예약 문의 전화가 쇄도하는 것이다. 객실 사진조차 올리지 못하였는데 예약 문의라니 황급히 사진을 찍어 문자로 보내드렸는데, 며칠 사이에 오픈 첫날의 모든 예약이 완료되었다. 객실이 4개뿐이라 4~5팀만 받아도 게스트하우스는 만실 상태로 오픈 첫날부터 성업을 이루게 되었다. 

대망의 오픈 첫날, 청소를 마치고 체크인 시간이 가까워지자 얼마나 긴장이 되던지. 옥상에서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열을 식히고 있을 때 골목 초입에서 캐리어 바퀴가 끌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쏜살같이 대문으로 뛰쳐나가 첫 손님을 반겼던 순간은 여전히 잊을 수가 없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여행이란 공통분모로 엮여 인연이 맺어진다는 일. 나이는 몇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모든 것을 잠시 내려두고 온전히 하룻밤에 집중한다. 분명 낯선 사람들이지만 수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그중 오픈하고서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어느 주말에 방문해주셨던 태안의 언니들.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다 게스트하우스의 오픈까지 있었던 여러 비화들까지 풀 게 되었다. 그러다 언니는 잠시 객실에, 나는 화장실을 가며 객실 상태를 확인하던 때 언니가 소등한 거실에서 나에게 속삭였다. “설아 정말 장하다. 게스트하우스 곳곳에 너의 정성이 보여.” 언니의 한 마디에 나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가족들 외에 그동안의 노고와 고생을 알아주며 토닥여준 그 한마디가 너무나도 따뜻했고, 게스트하우스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만들어간 가족들에게도 너무나 고마웠다


그렇게 순탄하게 오픈하고 난 한 달간은 문제없이 손님을 받았다. 청소, 빨래, 설거지, 정리 등의 살림은 그동안 해왔던 터라 자신 있게 해 나갔다. 하지만 겨울의 문턱을 넘기 시작하며 예상하지 못한 문제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바로 난방 ‘보일러’ 문제였다. 오픈을 하였던 2014년도 그해 당시에는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LPG 가스보일러를 사용했다. 

어느 초겨울 아침, 조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온수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온 객실이 만실인 상태였다. 크게 당황할 뻔하였으나 정신을 번뜩 차리고 우선 새 가스를 교체하기 위해 곧바로 가스 사장님께 주문 전화를 걸었다. 손님들께는 상황을 설명하고, 조식을 먼저 드시고 계시길 권해드렸다. 

평소 5분 안에 오시던 가스 사장님께서는 그날따라 늦으셔서 슬슬 애가 타기 시작했다. 애꿎은 보일러 컨트롤만 이리저리 조절해가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해방에서 머리 말리는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온수가 나오지 않았을 텐데 머리를 감으셨을 거란 생각에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나가 골목 초입에서 사장님이 오시기만을 기다렸다. 10분이 100분 같아질 때쯤 가스통을 잔뜩 실은 흰 트럭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가스가 아직 떨어질 때가 안됐는데 온수가 안 나와요. 사장님” 하고 묻자 사장님께서는 가스 함을 열어보시고 해답을 말씀해주셨다. “요 봐요 요 봐요. 가스통이 얼었잖아요. 얼은 가스통은 잠깐 닫아두고 새것을 열어서 먼저 써요.” 쓰고 있던 가스통 아래를 보니 얼음 살들이 따닥따닥 붙어있었다. 일단 새 가스 밸브를 열고 온수를 틀어보자 다행히 따순 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그날 손님들이 퇴실하고 난 후 검색을 해보자 가스통도 겨울철에는 충전된 액화가스 잔량이 얼마 남지 않은 경우, 공기 중에 수분이 얼어버려 공급이 막혀버린다는 것이다. 가스통 겉면에도 얼음 살이 불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겨울철에는 LPG 가스의 동결을 막기 위하여 가스함 주변에 열선이나 보온용 유리섬유, 스티로폼 등으로 막아주어야 했다. 


그밖에도 보일러 난방의 적정 온도, 도시가스 온수 문제로 그 작은 게스트하우스 안을 헐레벌떡 뛰어다니며 직접 알아보고 해결을 하였다. 준비가 되어있던 것도 있었지만 난방 문제로는 실전에서 직접 부딪히며 배워나갔다. 매번 너그럽게 이해해주셨던 우리 소중한 게스트분들 덕분에 큰 지장 없이 빠른 시간 내에 해결할 수 있었다. 또 한 번의 큰 사건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또한 건축법에 대해 전혀 인지하지 못하였고, 공사를 맡은 목수님들 또한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증축을 하여 운영 도중 구청의 불법건축물 조사에서 적발이 된 것이다. 결국 또 한 번, 조급한 도전이 초래한 실수가 생긴 것이다. 리모델링 공사가 시작되며 목수님들이 마음과 몸, 집까지 엉망진창으로 만들며 떠나고, 두 번째 공사로 가족들과 열과 성을 다 받쳐 집을 완공시켰더니 운영 도중 불법건축물이 적발되었다. 공사에 지쳐 버린 가족들은 게스트하우스를 관두자고 했다. 다음날 구청에 찾아가서 담당자에게 빌거나 폐업 신고를 하자고 했다. 여러 말들이 오가다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게스트하우스를 쉽게 포기할 수 없어 예상치도 못한 세 번째 공사를 결정지었다. 공사가 시작되며 준성수기 시즌을 또 한 번 날리게 되었다. 불가피한 상황을 설명드리고 몇몇 예약을 전액 환불해드리고 난 뒤, 공사를 마칠 때까지 예약을 일체 받을 수가 없었다.

증축으로 적발된 곳을 모두 뜯어내며 정성스레 꾸몄던 곳을 뜯어낼 때에는 내 몸의 일부를 떼어내는 것만 같았다. 공간은 비좁아지고, 마감 또한 이전보다 어설퍼졌지만 큰 깨달음을 얻었다. 불법건축물 적발이 없었더라면 아마 지금까지도 건축법에 무지했을 것이고, 운이 좋게 넘어갔다고 한들 미래에 더 큰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나는 게스트하우스 공간 운영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피부로 느끼며 배워나갔다. 실전에서 부딪히고, 모르는 것들을 물어가며 온몸으로 익혔다. 무언가를 새로 이루어내는 동안 실패를 마주할 확률이 몹시 높았다. 실패를 마주한 그때, 대처하는 행동에 따라 한층 나아갈 수 있느냐 없느냐의 갈림길에 놓였다. 게스트하우스가 만들어지는 시점부터 운영하는 동안 사기, 횡령, 고소, 공사, 불법건축물 등 순간적으로는 실패라 단정 지을 만한 일들이 수시로 찾아왔지만, 우여곡절 끝에 모든 사건, 사고들을 넘기고 나니 하나의 경험으로 응축되어 짙은 교훈을 얻었다. 단번의 성공보다는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원인과 결과를 고민하는 그 과정이 굉장히 중요한 요소였고, 간혹 그 고민들이 모여 더 단단한 마음가짐과 차별화된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사회는 이런 과정과 시간에 굉장히 인색하다. 눈에 띄는 결과물이 보이지 않으면 실패라 단정 짓기 마련이다.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거듭되는 실패 속에서 실패는 결코 실패가 아님을 느끼며,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만 해도 귀에 딱지가 들어 안도록 배운 첫 명언이 바로 이것이었음을 상기시켰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숙박업의 실체는 청소로 시작해 청소로 끝나는 일이었다. 체크인 전 청소를 마감하며 청결, 위생을 우선으로 챙기고 체크아웃 후 본격적인 청소와 빨래를 시작한다. 어린 나이였지만 대안학교를 다니며 청소하는 습관을 들이고 홈스쿨링을 하며 공동체 생활, 펜션, 한의원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을 만나고, 청소와 빨래하는 법을 보잘것없이 생각하지 않고 익혔다. 그로 인하여 의도치는 않았지만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을 닦은 것이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청소와 빨래 같은  살림의 일들을 가소롭게 생각하지만, 결코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다. 삶의 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목만이 공부라고 칭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 밖을 나온 나에게 어른들은 항상 학교에 가지 않고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서 쉽게 접하는 일상의 사소한 모든 것들 또한 공부가 필요한 것들이었다. 학교와 학원에서 배우는 교과 공부만이 결코 공부라고 칭할 수 없다. 학교라는 울타리의 제한을 풀고 세상의 모든 곳을 학교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게스트하우스는 나에게 대학이었다. 열아홉 살은 고3 학생들처럼 입시 준비를 하듯 게스트하우스 공사를 하였고, 그해 말 게스트하우스를 정식으로 오픈하며 14학번이 되었다. 신성한 노동 과목과, 소통과 인연이라는 인문학을 통해 경영을 공부했다. 학교 캠퍼스에서 배우는 친구들과 다른 점은 현장에서 배우며 발로 뛴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것들 하나하나가 내게는 모두 배움이었다. 그 안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인연을 맺고, 게스트하우스란 연결고리로 여러 가지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였다. 게스트하우스의 젊은 사장으로서 방송 출연도 해보고, 인터뷰도 해보고, 원고 기고도 해보고, 강의도 나가보며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광의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현재는, 햇수로 3년을 채우고 나는 졸업을 하였다. 게스트하우스를 탄생했던 과정부터 운영을 하고 마침표를 찍기까지 겪은 모든 경험들로 인하여 나의 이십 대의 시작은 무척이나 풍성했다. 나를 벅차게 만들었던 기쁨과 스스로 이겨내야 했던 불안함과 외로움마저 모두 저마다의 쓰임새를 갖춘 거름이 되었다. 3년을 끝으로 나의 게스트하우스 수명은 꽤나 짧은 것이었을지도 모르지만, 나의 도전은 여기서 끝이난 게 아닐 것이다 


어린 나이에 시작한 게스트하우스와, 학교에 가지 않는 나에게 많이들 물어보셨다

“불안하지 않니 불안정한 미래가 결코 두렵지는 않니.”

열아홉 소녀는 당차게 대답한다 

“저는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살기에 불안하지만, 매여 있지 않기에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살아요.”

고작 그 시기를 지난 지 5년이 채 안 되었지만, 열아홉 살짜리의 당찬 용기에 부러움을 느낀다. 그 아이를 조금씩 불러오며 다시 무한한 가능성 안에서 헤엄치고 싶다. 분명한 것은, 나의 게스트하우스가 망했을지는 몰라도 내 인생은 더 흥하고 있다는 것. 당장의 눈앞의 결과물이 아닌, 그것을 이루는 과정과 고군분투하는 순간의 노력과 시간이 가진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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