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오래된 버릇이 하나 있다.
좋은 버릇이 아닌데도 어린 시절부터 꾸준하게 지켜나가고 있는 버릇이다.
나는 운다. 매번 떠나고 돌아오는 순간, 시작과 끝에 꼭 두 번을 운다. 집과 여행을 떠나고 싶지 않다고 울고,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한 번 더 운다. 어느새 15년이 된 짓궂은 버릇이다. 다른 일로 15년을 했다면 장인 소리를 들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그만큼 꽤나 긴 시간 동안 다수의 시작과 끝을 이 버릇과 함께 나이가 들었다. 어린 마음에 부모님의 곁을 떠나는 게 서글퍼 눈물을 쏟아냈나 싶었는데, ‘절제’란 단어를 익힌 성인의 나는 크게 달라진 게 없다.
떠나는 그 순간, 감정이 주체되지 않아 눈물을 쏟아내는 일이 여전하다. 그래서 요즘은 울지 않는 순간이 더 이상하게 보일 때가 많다. 오빠는 비꼬듯이 묻는다. “이번엔 왜 안 짜냐?”
여행을 떠나면 적응이 어려운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일이다. 그렇게 좋아할 것을 알면서도 떠나는 순간은 어째서 그토록 슬프고 서글프고 서운할까. 아직도 나는 떠나는 순간이 많이 두려운가 보다.
성인이 된 나는 여전히 우는 버릇을 고치지 못했지만, 다행히 순간의 감정에 크게 속지 않고 눈물을 펑펑 흘리며 굳세게 떠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울고 불며 가지 않겠다던 어린 시절의 나는 타인과 상황의 등떠밈에 어쩔 수 없이 떠났지만, 지금은 스스로 떠날 줄 알게 된 것이다. 순간의 감정에 휩쓸린다면 지금껏 나를 만들어온 숱한 경험과 추억이 없었음을 깨달았다.
여행을 떠나는 순간 외에도 새로운 모든 일을 시작할 때 역시 마찬가지이겠다 싶었다. 그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리지도 못하고 멀어져 버리는 것이다.
2018년의 여름, 필리핀에서 대안학교 사감으로 이른 여름을 보내고 한국의 여름으로 복귀했어할 때이다. 돌아오기 전부터 얼마나 마음이 심란하고 울컥하는지. 역시나 필리핀에 가기도 전부터 눈물을 한바탕 쏟고 왔는데, 얼마나 재밌게 잘 살았는지 그사이에 쏟고 온 만큼의 배로 충전된 눈물샘. 게다가 새로운 시작을 앞둔 나는 크게 파동 쳤고, 그런 마음을 위로해주는 듯한 서정적인 멜로디의 음악들이 어찌나 헤집고 들어오던지. 연약한 나는 꽤나 많은 밤을 보내는 동안 베개 속에 머리를 파묻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헷갈리는 것들을 훔쳐냈다. 감정의 출혈이 컸다. 거센 태풍이 잔뜩 불어대자 나약해질 대로 나약해진 나의 마음은 줏대 없이 마구 흔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다 예쁜 꽃을 찍고 있는데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정말 뜬금없이 든 생각이었다. 사진을 찍는데 자꾸만 바람에 흔들리는 꽃을 보고 이런 생각이 든 것인가 보다.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새로운 바람이 부는 거겠지.”
줏대 없이 흔들린다고 자책하지 말고, 새로운 바람을 맞이하자. 민들레 씨앗이 바람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가듯이.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은 새로운 준비를 해야 할 타이밍인 것이지. 그렇게 서서히 마음을 비우기 시작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나는 아주 좁은 보폭으로 필리핀의 여운을 빠져나왔다. 돌아오고 나서의 하반기는 느린 걸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며 여정을 즐기는 법을 택했다. 그리고 그 느린 걸음을 걷기 위해서는 이해해줄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새로운 시작의 두근거림과 두려움이 교차하는 순간에 놓인 모든 사람을 응원하고 싶다. 나 또한 말이다. 사람의 인생은 셀 수 없이 반복되는 시작과 끝이 있다. 두려움과 공존하며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수많은 시작, 그로 인해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과의 기억. 기억이 추억이 되고 추억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다.
앞으로도 두려움에 크게 속지 않고, 이별에 앞서 아낌없이 표현하고 충분한 마음을 전달하여 새로운 시작을 반기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