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열아홉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동안, 숙박업에 관련한 일뿐만 아니라 공간과 역할로 인해 파생되는 여러 일들이 많았다. 그중 공간 안에서 만나는 우리 게스트들, 주인장이란 이름으로 소개받은 사람들, 일상을 살아간다면 쉽게 만날 수 없었던 다양한 나이대, 지역,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며 새 인연들을 사귀었다. 그리곤 간혹 게스트하우스에서는 보통 하룻밤만큼의 정이 들기 마련인데, 짧은 시간 내에 일정치 이상을 나누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 창업을 결심한 순간부터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오픈하기까지의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런 나의 어설픈 이야기까지 귀 기울여 들어주시고, 열렬히 응원해주던 인연들이 직접 게스트하우스까지 찾아준 고맙고 소중한 일들이 참 많았다.
M언니는 게스트하우스가 공사 중일 때부터 온라인상에서 차곡차곡 응원을 보내주셨는데, 오픈을 하자 가족들과 함께 직접 게스트하우스를 찾아주셨다. 분명 처음 만나는 순간이었지만, 마치 오래 알고 지냈던 언니처럼 포근한 말들로 나를 안아주시며 인사를 건네주셨다. 그 후 게스트하우스 1주년을 맞이하였는데, 난생처음으로 꽃 배달을 받아보았다. 꽃 중앙에는 유설 양의 삶의 체험 현장, 비빔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1년 동안 수고 많았다는 애정 어린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1주년을 맞은 그날은 나에게 더없이 기쁘고 후련한 날이었는데 메시지를 보고 내가 이 꽃다발을 받아도 되는 것인지, 내가 뭐라고 이렇게 귀한 시간과 정성을 들여서 마음을 써주시는 것인지 그 자리에 앉아 펑펑 눈물을 쏟았다.
B님은 게스트하우스를 닫았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장님이란 호칭으로 나를 부르신다. 게스트하우스 공사 과정 때부터 열렬한 팬을 자처해주시며, 언제나 사기를 북돋아 주는 말들을 건네주셨다. 그분을 처음 뵙게 되었던 그날 역시, 분명히 낯선 분이었지만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서로를 뜨겁게 반겼다. 그 후로도 게스트하우스 기념일과 이벤트를 매번 먼 곳에서 찾아주셨다.
그리고 B님은 모든 말의 끝에 항상 고맙다는 말을 덧붙이신다. 아직까지도 나는 그 고맙다는 인사에 무척 쑥스럽다. 내가 B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렸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시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받은 마음들을 다시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오픈 후에는 열아홉 살 사장님이라는 타이틀로 여러 매스컴에 소개되었다. 인터뷰들을 보고 많은 분들과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중 무전여행 중이셨던 여성 두 분께 연락이 왔다. ‘무전여행이라니, 이 시대에 가능하다고? 만만치 않은 분들인가 봐. 꼭 만나야 해.’ 그 스토리가 궁금해 게스트하우스로 초대를 하였고, 생생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생각지 못했던 루트로 인연을 맺고, 그들이 담아온 여행 이야기와, 과감한 용기에 두근거려 밤새 붕 뜬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세상에 멋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구나.”
앞으로 내 인생에 찾아올 무궁무진한 사람들에 대한 기대와 그들에 도전 정신에 전염되어 가슴이 뛰었다. 언니들이 하룻밤을 머물고 간 그다음 날, 그들의 친구들이 찾아왔다. 언니들의 지인을 만나 또 그의 지인을 만나고 또 그들의 팀을 만나기도 했다. 인연의 연결고리란 참 신비했다.
게스트하우스 숙박으로 찾으셨던 우리 손님들과 평소라면 쉽게 꺼내지 못할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던 때도 기억에 남는다. 모두의 출발지와 목적지가 다르지만, 타지에서 같은 공간을 머무른다는 공감대 하나로 비슷한 감정을 느끼곤 한다. 이상하게도 처음 만난 이들과 평소보다 쉽게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며 마음의 짐을 덜어놓기도 한다.
여름이 찾아오기 전, 전주의 영화제 기간이었다. 그날 게스트하우스를 묵던 세 명은 나이도, 직업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비슷한 결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었다. 다 같이 영화제의 야외상영장에 찾아가 지루한 영화를 보고 사랑방에 모여 오순도순 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각자의 무거운 고민도 자연스레 꺼내게 되었는데, 꿈을 찾던 고등학생의 소녀에게 앞서 걷던 이십 대의 언니가 마음을 위로하고 진심 어린 용기를 건네주기도 했다.
그다음 날에는 3박을 하던 L언니와 전주 인근 도시를 함께 거닐다 돌아왔다. 저녁에는 사랑방에 둘러앉아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각자의 희망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서로의 열렬한 응원과 지지에 힘입어 가능성을 넓히곤 그 날밤 우리는 기분 좋은 꿈을 꿨다.
지나칠 수 있는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그들은 내게 더 넓은 세상이 펼쳐져 있다고 일러주었다. 그 달콤한 속삭임들이 나의 미래를 더 다채롭게 꿈꾸게 만들었다. 용기를 가진 사람들, 감정을 표현할 줄 아는 사람들, 마음을 나눌 줄 아는 사람들, 과감한 실행력을 가진 사람들, 진심 어린 마음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의 심리를 이용하는 못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세상에는 멋진 사람들이 참 많았다.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들, 닮고 싶은 사람들, 어른이 된다면 저런 어른이 되고 싶다 하는 바람까지 가졌다.
『방문객』이라는 유명한 시의 구절 중 이런 문장이 있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시의 주제가 맞거니 해서 인용을 했지만, 지금은 시의 구절을 온 마음으로 느끼며 공감한다. 게스트하우스로 만난 많은 사람들과 같은 순간에 머무르며 과거를 꺼내고, 현재를 살피며, 함께 미래를 꿈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