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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설아 Oct 04. 2024

몽블랑의 침묵: 불길에 잠긴 터널

버트 디그레이브는 여느 때처럼 무겁고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차 안 라디오에서는 그의 귀를 자극하는 음악이 흘러나왔지만, 그의 머릿속은 이미 다음 날의 일정으로 꽉 차 있었다. 트럭은 묵직한 짐을 싣고 터널을 지나고 있었고, 그에게 오늘은 그저 또 하나의 평범한 하루일 뿐이었다.


1999년 3월 24일 아침, 길버트는 이탈리아 밀라노로 가는 몽블랑 터널에 진입했다. 그 터널은 유럽의 두 심장,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잇는 '유럽의 새 동맥'이었다. 매일 수백 대의 차량이 이곳을 통과했고,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길버트는 깊은 터널 속으로 들어가며 한숨을 내쉬었다. 밀가루 12톤과 마가린 9톤을 실은 그의 트럭은 어둡고 길게 뻗은 터널의 벽을 따라 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날 아침의 평범함은 그저 짧은 착각이었다.


그가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앞차의 운전자가 창밖으로 던진 담배꽁초가 그의 트럭 공기 흡입구로 들어간 순간부터 비극은 시작되고 있었다. 흡입구 속에서 피어오른 불씨는 천천히 트럭을 뒤덮으며 흰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길버트는 아무것도 모른 채 앞을 주시했다. 반대편 차선에서 달리던 운전자들이 경적을 울리며 경고했지만, 그에게는 그저 지나가는 소음처럼 들렸을 뿐이었다.


시간은 흐르고, 연기는 점점 더 짙어졌다. 터널 관제소의 모니터링 시스템이 가시거리가 30% 이상 하락했다고 경고했다. 컴퓨터는 경고 알람을 울렸지만, 관제소는 이를 시스템 오류라고 치부했다. 과거에도 이런 경고가 자주 잘못 울렸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관제소 모두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운명은 이미 길버트와 그날 터널을 지나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잔인한 결말을 예약한 셈이었다.


오전 10시 52분, 연기가 트럭 안으로까지 스며들었다. 길버트는 마침내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터널 안에 트럭을 멈췄다. 하지만 그곳은 왕복 2차선 터널이었다. 갓길이 없는 그 좁은 공간에서 트럭이 멈추자, 뒤따르던 차량들이 그대로 길을 막히게 되었다. 한순간에 터널 내부는 연기와 혼란에 휩싸였다. 도망칠 길은 없었고, 모든 것이 눈앞에서 빠르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길버트는 소화기를 꺼내들고 불길을 막아보려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불이 마가린과 밀가루에 붙으며 급격히 번졌다. 순식간에 트럭이 폭발했다. 길버트는 공포에 질려 트럭을 버리고 터널 입구 쪽으로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폭발의 여파로 터널 안에 갇힌 사람들은 패닉에 빠졌다. 그들에게는 갈 곳이 없었다.


터널 안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는 더 이상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차들은 연기로 뒤덮여 시야가 막혔고, 터널을 빠져나가려는 시도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무너졌다. 몇몇 운전자들이 필사적으로 후진을 시도했으나, 이미 도로는 막혀 있었다. 차들은 움직이지 못했고, 사람들은 차를 버리고 대피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터널 내부는 이미 유독성 연기로 가득 차 숨을 쉬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연료통이 터지고 타이어가 폭발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 퍼졌다.


그 사이 프랑스 소방대가 터널로 급히 진입했다. 그러나 2km 정도 진입한 후, 그들도 짙은 연기 속에서 발이 묶였다. 소방차는 산소 부족으로 시동이 꺼졌고, 소방대원들은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 소방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들도 곧 연기와 폭발의 공포 속에서 퇴각해야 했다. 그들은 더 이상 진입할 수 없었다. 터널은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11시 11분, 마지막으로 투입된 구조대조차도 대피소로 후퇴해야 했다. 터널 내부 상황은 이미 지옥이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53시간이 지나서야 불길은 스스로 꺼졌다. 터널 안은 마치 용암이 지나간 흔적처럼 모든 것이 타버렸다. 차체는 녹아내렸고, 콘크리트는 부서졌다. 39명의 사람들이 그 안에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들은 구조를 기다렸지만, 구조는 오지 않았다.


그날 이후, 몽블랑 터널은 단순한 교통 통로가 아닌 비극의 상징으로 기억되었다. 터널은 3년간 폐쇄되었고, 다시 개통되기까지 4억 1천만 달러가 투입되었다. 이제는 더 안전한 터널로 다시 태어났지만, 그날 그 안에 갇혔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영원히 그 터널 속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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