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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설아 Oct 18. 2024

죽음의 경기장

1964년 5월 24일, 리마 국립경기장은 축구 팬들의 열기로 가득했다. 이날 페루와 아르헨티나는 도쿄 올림픽 예선을 위해 맞붙었다. 경기 시작과 함께 수만 명의 관중들이 고조된 긴장감 속에 자리를 잡았다. 페루 팬들은 조국이 올림픽 진출권을 따내길 간절히 바랐다. 경기장은 아르헨티나의 선제골로 잠시 정적에 휩싸였지만,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페루의 빅토르 로바톤이 환상적인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골이다!”


수만 명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그 기쁨은 곧 심판의 휘슬 소리로 끊겨버렸다. 

심판은 골을 무효로 선언했다. 웅성거리던 경기장은 곧 혼란의 도가니로 변했다.


“이게 무슨 짓이야!”


관중석 곳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은 이내 거친 욕설과 폭력으로 변했다. 수천 명의 관중들이 심판 판정에 분노하며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지만, 격분한 군중을 제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혼란은 빠르게 경기장 바깥으로 번졌고, 관중들은 필사적으로 출구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경기장의 출입구는 그날 닫혀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문이 닫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앞사람을 밀치며 출구 쪽으로 몰려갔다. 몸이 작은 소년들이 발밑에서 넘어졌고, 그 위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그대로 쓰러졌다.


경기장 한 구석에서 친구들과 경기를 지켜보던 미겔도 그 혼란 속에 휘말렸다. 그는 간신히 출구 쪽으로 몸을 밀어냈지만, 차오르는 공포에 다리가 떨렸다.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압박감이 그를 짓눌렀다.


"빨리 나가야 해!" 누군가 소리쳤다. 그러나 그들이 나아갈 방향에는 사람들로 가득한 철문만이 보였다.


그 순간, 사람들은 누군가의 손에 부딪히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 위로 무수한 발이 얹혔다. 숨이 막히고, 시야가 흐려졌다. 바닥에서 느껴지는 발걸음이 그의 몸을 밟고 지나갔다. 그의 시야가 점차 어두워질 즈음, 그날의 비극은 이미 수백 명의 생명을 앗아가고 있었다.


4년 뒤, 1968년 6월 23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모누멘탈 경기장은 두 라이벌 팀, 보카 주니어스와 리버 플레이트의 격돌로 열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고, 0-0으로 끝났다. 경기가 끝난 뒤, 수만 명의 관중들이 동시에 경기장을 빠져나가려 했다.


“이리로 나가면 돼!” 한 남자가 소리쳤다.


수많은 사람들이 12번 출구로 몰려들었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군중들이 뒤에서 계속 밀려오면서 앞줄에 있던 사람들이 넘어지기 시작했다. 뒤에서 밀려오는 힘에 의해 넘어졌던 사람들이 깔리고, 그 위로 또 다른 사람들이 겹겹이 쌓였다.


74명의 생명이 이 작은 출구에서 사라졌다. 한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 안겨 있었지만, 어머니가 숨이 끊어지며 그 품 속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150명 이상의 사람들이 부상을 당한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비명과 고함을 질렀지만, 구조될 수 없었다.


더 과거로 돌아가, 1902년 4월 5일 스코틀랜드의 아이브록스 스타디움. 그날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간의 브리티시 홈 챔피언십이 열리는 날이었다. 관중석은 가득 찼고, 모두가 긴장 속에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이 경기장이 무너질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목재로 지어진 관중석은 얼마 전 내린 비로 이미 약해져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게가 더해지자 나무는 삐걱거렸고, 조인트 부분이 파열되기 시작했다. 오후 4시쯤, 거대한 소리와 함께 관중석의 한 부분이 붕괴되었다.


18미터가 넘는 구멍이 뚫린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12미터 아래로 떨어졌다. 주변의 관중들은 경악했고, 붕괴된 자리에 있던 수백 명의 사람들은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몸부림쳤다.


이 사고로 25명이 사망했고, 부상자는 500명이 넘었다. 그러나 경기는 멈추지 않았다. 경기를 중단하면 더 큰 혼란이 생길까 두려워, 주최 측은 사고 직후 20분간의 휴식만을 허락했다. 사고를 모르고 경기를 계속 지켜본 관중도 있었다.


이 세 가지 참사는 각기 다른 시대,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지만, 결국 그 뿌리는 하나였다. 수천 명이 모여드는 공간, 그곳에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할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그 임무를 다하지 못했다. 리마에서는 팬들의 분노가 폭동으로 번졌고,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출구를 향해 몰려들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무너진 관중석이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원인은 제각기 달랐지만, 그 결과는 하나였다—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었다.


우리는 이 사건들을 통해 배워야 한다. 축구 경기장이든, 대규모 공연장이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그 순간, 그 장소는 위험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다. 그곳은 사람들의 환호와 기대만큼이나, 목숨을 위협하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다. 안전을 위한 준비가 부족할 때, 작은 실수가 거대한 비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리마의 폭동,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압사, 그리고 스코틀랜드의 붕괴 사고 모두 그 한순간에 결정된 것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쌓여온 부주의와 방심, 그리고 잘못된 판단들이 그날의 참사를 만들었다. 우리는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다시는 비명으로 바뀌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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