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대평원의 바람은 이제 더 이상 따뜻한 축복을 실어 나르지 않았다. 그 대신, 인간의 탐욕이 남긴 상처를 드러내며 모래 먼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이곳은 한때 넓은 초원이었고, 대자연의 숨결이 깃든 축복의 땅이었다. 말 그대로 지평선 끝까지 끝없는 녹색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고, 풀은 힘차게 자라나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그러나 그 초록빛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황폐한 미래 지구처럼, 이곳 미국 중부 대평원은 먼지 구덩이로 변해버렸다. 우리가 상상 속에서만 그리던 황량한 대지가 현실로 변한 것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건조한 바람, 그리고 바람을 타고 날아다니는 흙먼지, 그것은 '더스트 볼'이라 불리며 사람들의 삶을 짓밟고 있었다.
이 모든 재앙의 시작은 19세기 후반, 미국 정부가 개척자들에게 농지를 나누어 주며 시작되었다. 무성했던 초원의 풀들은 하나둘씩 트랙터의 이빨에 의해 뽑혀 나갔다.
"160에이커를 너에게 줄 테니, 그 땅을 일구어라!"라는 외침은 수많은 사람들을 이 땅으로 불러들였다.
그들은 갈고, 뿌리고, 다시 갈아엎었다. 그러면서 더 많은 풀들이 사라졌다. 풀을 뽑아내며 드러난 땅은 처음엔 비옥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지력을 잃어갔다. 인간의 손길은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1930년대 초, 마침내 대자연이 분노의 숨을 토해냈다. 6년간 이어진 극심한 가뭄이 시작된 것이다. 강우량은 바닥을 쳤고, 땅은 갈라지기 시작했다. 땅의 얇은 표토는 갈수록 부스러져갔고, 그것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거대한 모래 폭풍이었다. 매일같이 불어오는 바람은 이제 그저 바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소리를 내며 대지를 휘저었고, 사람들을 집 안으로 몰아넣었다. 먼지 폭풍은 단지 불편함을 넘어 삶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했다. 그들은 호흡할 때마다 폐에 먼지를 들이마셔야 했고, 가축들은 먼지 속에서 질식해 죽어갔다.
"검은 일요일",
1935년 4월 14일.
그날, 하늘은 태양을 삼켜버렸다. 끝없이 치솟은 모래 먼지는 마치 세상을 삼키려는 거대한 괴물처럼 높이 3km를 넘게 치솟았다. 오클라호마와 텍사스, 그리고 캔자스, 이 모든 지역은 그날 뒤덮였다. 사람들은 이 미친 모래 바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아무리 문과 창문을 닫아도, 집 안으로 스며드는 먼지를 막을 수 없었다. 숨조차 쉬기 힘든 그 공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결국 이 땅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무려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그들은 희망을 품고 서쪽으로, 캘리포니아로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것은 희망이 아닌 또 다른 절망뿐이었다.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자리도 없는 대도시의 어두운 그림자였다. "오키,"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불렀다. 조롱 섞인 단어였다. 그들이 찾아온 서쪽 땅에서조차 그들은 환영받지 못했다.
이 참혹한 더스트 볼의 상처는 단지 미국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전 세계적으로 울려 퍼진 경고의 메아리였다. 토양이 사라지고, 물이 말라가며, 인간은 더 이상 자연의 일부가 아니라, 자연을 파괴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황사로 고통받는다. 중국과 몽골에서 시작된 사막화는 매년 봄이 되면 우리나라의 하늘을 뿌옇게 만들고, 사람들의 폐 속으로 황사의 미세 입자가 파고든다.
우리는 지금도 '더스트 볼'의 후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