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4월, 체르노빌 발전소에서는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 평소처럼 차가운 공기를 뚫고 새벽조 직원들이 출근했다.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터빈과 원자로의 소리를 점검하며, 무표정한 얼굴로 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날 새벽의 공기는 어딘가 달랐다. 부소장 겸 수석 엔지니어인 아나톨리 댜틀로프는 그들 앞에 특별한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댜틀로프의 이 실험은 원자로의 출력이 중단되었을 때 관성으로 도는 터빈의 전기가 얼마나 오래 유지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려는 것이었다. 그 실험의 의도는 단순했다. 체르노빌의 안전성을 입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날 그들은 원자로의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설계된 안전 장치를 해제해야 했다. 이미 늦어진 전력 요구로 인해 실험은 새벽 시간대에 무리하게 변경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새벽조가 실험을 떠맡게 되었다.
새벽의 체르노빌은 점차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원자로 내부의 출력은 의도보다 훨씬 낮은 30MW로 떨어졌다. 그로 인해 제논-135라는 물질이 방사선을 흡수하며 원자로의 균형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현장의 누구도 이 사실을 완벽히 인지하지 못했다. 대피할 시간조차 없이 폭발이 점차 다가오고 있었다.
정신없이 이어지는 실험의 절차 속에서 원자로는 점차 압력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내, 거대한 굉음과 함께 원자로는 산산이 부서지며 방사능의 붉은 불꽃이 체르노빌 하늘을 채웠다. 상공으로 치솟는 검은 연기와 붉은 섬광은 곧 도시 전체를 덮쳤고, 그곳은 이제 생명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진 위험한 지대로 변했다.
이후로도 오랫동안 체르노빌은 봉인되었다. 거대한 콘크리트 석관은 방사성 폐기물을 가두기 위해 쌓였고, 수많은 인원이 투입되어 사고의 흔적을 정리했지만, 방사능은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지금까지도 '체르노빌의 유령'이라 불리며 사람들을 위협하고 있다.
2022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에서 체르노빌이 또다시 뉴스에 등장했을 때, 감마선이 다시 한 번 그 지역에서 높게 검출되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은 잊힌 역사가 아닌, 여전히 살아있는 재난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