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업실에서

by 손두부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났는가.

내가 이 고통의 이유를 알게 된다면 난 겸허히 받아들일 용기는 있나?


나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다.

나의 아이는 어릴 적 이곳 미국에서 자폐 진단을 받았다.


왜 하필 나의 아이인가?

그건... 어쩌다 보니 그냥 우리에게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왜 하필 나인가'라는 질문을 '왜 꼭 내가 아니어야만 하는가?'라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처음 아이가 진단을 받았을 당시, 무조건 참기만 했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잘 받아들인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참고, 또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란 말인가?

그 일의 시작은 다시 나를 돌보는 일부터였다.

비어버린 마음을 채우는 일을 몇 가지 시작했는데 그건 비어있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더 꺼내 쓸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내가 하기 시작한 일은 뜨개질이었다.

처음부터 대단한 일일 필요는 없었다.

아이의 상태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을 직감했을 당시, 반복적인 뜨개질을 하며 그저 이 시간이 그냥 흘러가 버렸으면 하며 버텼다. 하지만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뜨개질을 하며 텅 비어버렸던 내 마음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 뜨개질이란 묵상할 때 같이 하는 동료, 무념무상이고 싶을 때 하는 행동, 그리고 예상한 그대로의 결과물이 나오는 행위예술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 집 고양이, 개츠비가 늘 같은 장소에서 낮잠을 자는 것과 같은 철저한 나만의 안전지대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손놓았던 피아노를 다시 치기 시작했다.

그 당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었던 나의 상황에서 연주하며 만들어내는 피아노 소리는 온전한 나의 선택이었다. 피아노 연습을 통해 한곡을 완성할 때마다 오랜만에 느끼는 만족감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몸과 마음을 모두 집중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게다가 나는 피아노를 치는 그 시간만큼은 이 세상에 있지 않았다. 그런 어떤 것들의 사이의 시간이 현실 속에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게다가 말에 영 서툰 나는 이렇게 감성에 치우쳐 피아노를 치는 내가 마치 대화를 멋지게 이끄는 철학자 같아 보여서 가끔 도취되기도 한다. 어릴 때 배운 악기는 모국어가 되어 목소리와 혀가 아닌 손을 통해 이렇게 다시 한번 나를 실현한다.


그리고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어느 날 컴퓨터 안에 뒤죽박죽으로 들어있던 오래된 사진들을 정리해야겠다 마음먹었다. 밥하기보다 청소 하기인 나는 이렇게 정리를 하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습관이 있다.

컴퓨터 앞에 앉아 오랜만에 예전 사진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면서 어느 순간 나는 그날로 소환되고 있었다.

처음엔 한 줄 정도의 제목과 설명을 달아 정리해놓을 계획이었는데 어느새 사진 한 장에 그 당시 느꼈던 감정으로 긴 글을 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 글에는 형식도 없고 논리도 없었다. 그렇게 뭔가 토해내듯 자판을 두드리던 나는 두어 달을 꼬박 그러고 앉아 있었다.

생각을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 방법이 나에게 대단한 경지의 깨달음이나 번뜩이는 해결책을 안겨주지는 않았지만 마음을 정돈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이 일을 하면서 그동안 원래부터 답이 없는 질문을 얼마나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던가 알게 되었다. 그렇게 글쓰기는 나에게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대신, 이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 어디로 향할 것인지 결정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내 마음의 결정'이 시작되었다.

컴퓨터 안에 사진들은 아직도 정리되지 않았지만.


전공을 살려 그림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표현하기도 했다.

이렇게 바쁘게 움직여 새로운 루틴을 유지하고 그 힘이 내 정신을 북돋았다. 몸이 먼저 내 정신을 위로하고 이끌어주기 시작했다.

물론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있지만, 나는 이것을 꼭 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한다.

결국 이 모든 행동들을 통해 비어있던 나의 마음을 서서히 채워나가면서 계속해서 나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는 힘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다른 사람들을 조금은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 오전에도 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

저녁때가 되어 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오늘은 어떻게 지냈어?”

하루 종일 내 옆에서 선잠을 자던 개츠비가 자기가 낮에 본 것들에 대해 입을 다문 체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더니 저만치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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