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우리 아이들은 18세를 맞이하게 되는데, 내가 사는 미국에서는 장애아들이 성년이 되었을 때 성인으로써 가질 수 있는 권리, 예를 들면 경제활동이라던가, 의료문제라던가 하는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권리들을 올바르게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고려해, 그 권리를 대행할 수 있는 자격을 부모 혹은 대리인에게 양도하는 법적 절차가 있다.
바로 conservatorship이라는 이 법적 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우리는 그날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던 것이다.
"언닌... 애들 대리인이 되는 이 판국에 오래 살 생각을 해야지 왜 자꾸 죽는 얘길 해..."
변호사 사무실을 나서면서 나는 언니의 마음을 알면서도 괜스레 내 마음이 가라앉았단 이유로 핀잔 반, 속상함 반, 언니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대비해야 되니까...."
언니의 덤덤한 대답.
아픈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이렇게 나의 부재를 상상하는 일이 잦아진다. 이런 상상은 아무 때나 딸꾹질처럼 툭하고 튀어나온다. 한날 내가 해준 김치볶음밥을 잘 먹는 아이의 모습에 아! 잘 먹네! 하고 즐거워하는 마음보다, 내가 없을 때 저 김치볶음밥을 이 미국 땅에서 누가 해줄까...그렇게 내 딸꾹질은 쉽게 멈추지 않는다. 내가 끊임없이 상상할 수밖에 없는 나의 부재는 이렇게 내 일상의 일부였다.
나는 죽음에 대해 사실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한때는 실제로 죽어버릴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나의 아이는 자폐라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아이가 자폐라는 판정을 받은 것도 그랬지만 점점 더 악화되는 모습에 나는 지칠 대로 지쳐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동안 오롯이 혼자서 이 슬픔을 참고 견뎌야 한다고 생각해왔는데 그것은 그저 참고 견디기만 해서 될 일은 아니었다. 어떻게든 이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여야만 했었다. 제대로 받아들이는 게 뭔지 지금도 모호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냥 무작정 참는 것은 맞지 않다는 것 정도는 경험상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정말 가혹한 일인데, 나의 일상을 조용히 차곡차곡 파괴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나는 매일 노을이 질 때면, 의자를 딛고 올라가 동그란 매듭 안으로 내 목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나는 발 밑에 있는 의자를 힘껏 밀쳐내지 못했다. 나는 얌전히 다시 의자를 딛고 내려와 남은 하루를 정리했다.
해가 뜰 때 역시, 나는 이미 지쳐버린 마음으로 침대에서 내려와 하루를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숨 쉴 줄도 모르면서 숨을 잘 쉬고 있는 사람처럼 흉내를 내며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다시 저녁밥을 준비하기 위해 부엌에 돌아왔고, 다시 해 질 녘 창밖의 노을을 멍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 당시 살고 있지 않았다.
일상이 돼버린 나의 부재에 대한 상상,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한 도피 같은 죽음. 나는 더 이상 이런 종류의 죽음에 매달려있지는 않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우리는 어차피 그날에 도달할 테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죽음에 대해 매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생각하는 죽음은,
살고자 하는 나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소환하는 죽음이다.
헛되고 헛되면서도 절대적인 내 존재성을 일깨워 주는 그런 죽음.
마치 해골이 그려져 있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벽에 걸어놓고 매일 깨달으려는 듯이 말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그것을 통해 삶에 대한 관찰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모순적이게도 나에게 벗어날 수 없는 슬픔을 주었던 나의 아이 때문이란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