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무너진 날들의 기록

정지

by 설안


이삿날 깨진 화분을 치우며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였던 그때였을까.

작고 평범한 삶을 꿈꿔도 된다고

처음으로 믿어버린 순간부터였을까.


언제부터 잘못된 걸까.


그저 평범했던 가난, 가끔씩 찾아오던 불행.

수면까지 기어 올라가 까무룩 숨을 쉬자면 다시 발목을 잡고 늘어졌던 사기, 생존을 위해 열심히 몸부림치던 행위. 그것 말고는 모르던 삶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나도 사기를 당하는 사람이 되어버렸구나.


38.5도의 고열. 전신을 찌르는 염증.

링거 하나로 하루를 버텼다.

코로나로 넘나든 생사의 고비,

쌓여가는 병원비와 갚아야 할 빚.

멈추는 순간,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았다.


뭐라고요? 전세 사기라고요? 등기부등본도 확인했고 보증보험도 들었는데요.

그것은 저를 지켜줄 수 없던 건가요.


내 몸은 해가 지는 개펄의 밀물처럼 밀려들고 밀려 들어와 엄마의 가게 창고에 멈춰 섰다.

한겨울 살이 에는 추위, 얇은 벽. 눈앞에 보이는 건 2평 남짓한 공간. 작은 텐트와 고양이의 밥그릇, 물그릇, 그리고 화장실.

“애옹 애옹.”

“모카야… 엄마가 미안해. 미안…”


목이 쉬도록 우는 나의 고양이. 그 눈을 바라보자 어느새 무겁게 맺힌 눈물이 흘렀다.

짜구나. 짜디 짜구나. 그것은 금세 식어 말라붙었다. 연두색 눈동자에 슬픔에 잠식된 사람이 비친다. 너는 나를 위해 대신 절규해 주는구나. 이 작은 방에 갇혀 목이 쉬어버리고 말았구나.


급하게 창고에 짐을 뺀 흔적. 벽에 붙은 낡은 포스터 속 모델은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며 웃고 있다. 여기서 얼마나 더 버티면 나갈 수 있을까. 창문도 캣타워도 없는 이곳은 고양이에겐 최악일 텐데.

아니지, 있을 곳이라도 있다는 거에 감사해야 하는 건가.


“사랑하는 모카. 밥 먹자.”

밥이 나오는 시간이다. 이 아이만큼은 굶기지 말아야지. 약속했었다.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겠다고. 이렇게 망가진 삶이라도 널 위해 붙잡겠다고.

터벅터벅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엄마 나갔다 올게. 전단지 돌리고 올 테니까 오후에는 네가 한 번 나가고.”

“엄마… 나 얼굴도 이런데 괜히 손님들 더 떨어지는 거 아니야?”

“아휴 속상해 진짜. 너 먹으라는 건강식품은 챙겨 먹고 있어?”

“우리 팔 것도 없는데. 괜찮아.”


벌컥거리며 내 방문을 열던 손님들.

“어머. 웬 고양이가 있네?”

밤에도 꺼지지 않던 불. 주말에도 갑자기 찾아오던 사람들.


나는 앙상해진 몸을 이끌고 공원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구석에 앉아 음악을 들으며.

바쁘던 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몸이 버텨줄 거라고 악기만 놓지 않으면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시간. 악기를 잡을 수 없는 나는, 이제 뭘 하고 살아야 할까.




어느덧 봄이 되어 모카는 창고에서 나왔다. 털이 날리면 안 된다고 그곳에만 있으라던 엄마의 마음도 조금은 풀어졌다.

“얘는 새벽마다 그렇게 나한테 오더라.”

“엄마가 밥 주니까 그렇지. 그렇게 자꾸 주면 습관 돼.”

“그럼 어떡하니. 동그란 눈을 뜨고 애옹애옹 거리는데. 뭐. 자꾸 보니 귀엽긴 하네.”


창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는 모카. 짹짹거리는 새소리에 발을 뻗어본다.

“봄인데 밖에 좀 나가지. 친구들도 만나고.”

“괜찮아. 나가면 다 돈이야.”



어느 날이었다. 날아온 문자 한 통에 스크롤을 내렸다. 여러 가지 공고를 보다 한 곳에서 눈이 멈췄다.

‘미래의 자서전.’

작은 독립 서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다.


오래 묵혀둔 말 하나가 떠올랐다. 연주자로 성공하면 인생을 책으로 남기겠다고 웃으며 말하던 때가 있었다. 미래라니. 분명 이런 현실을 상상한 적은 없었다. 그 단어를 한참 바라보다 화면을 껐다.


며칠 후 먼지가 쌓인 바이올린 케이스를 바닥에 내려놨다. 조심스레 쓸어내린 곳에는 손자국이 남았다. 케이스를 열자 콤콤한 나무 냄새가 스쳤다. 부러져서 힘없이 흩어진 활 털, 미처 닦지 못하고 스며든 하얀 송진 자국. 활 털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다 조용히 닫았다.


다시 그 화면을 눌렀다. 잃어버린 내가 있다면 마주하고 싶었다. 되찾진 못하더라도 말이다. 신청서를 몇 번이나 썼다 지웠을까. 직업은 연주자…를 썼다 지워버렸다. 정말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할까? 아직도 앙상한 몸뚱이는 그대로인데.




정말 내가 그리고 싶은 미래는 뭘까.

그렇게 제출이란 버튼을 눌러버렸다.

무슨 일을 마주할지도 모르고.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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