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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Sep 03. 2022

서울 서울 서울

김포공항에서 지하철로 향하는 무빙워크에 자연스레 몸을 맡겼다. 사람이 많다. 여기도 사람 저기도 사람. 주변을 살피며 눈알을 도로록 굴리는 소리가 난잡한 대화들 속에 묻힌다.


모르는 사람들과의 거리가 최근 제주에서는 거의 느껴본 적이 없을 정도로 가깝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폰 너머의 세계에 빠져들어 있다. 너무 가까운 듯 너무 먼 디지털 노마드들의 도시.


지하철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진다. 그 틈에 떠밀려 얼떨떨한 기분이 들다가 멀리 한 남자를 보았다. 그는 무척 바쁜 다리로 계단을 두세 개씩 겅중겅중 뛰어 내려왔다. 그는 '출입문이 닫힙니다 삐비빅' 하는 순간까지 최선의 속도를 내며 지하철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문아 천천히 닫혀라, 내 일인 양 잠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비슷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다. 노량진 고시학원에 가려면 종로3가역으로 가는 3호선 오금행 지하철을 탔어야 했는데, 매번 방향이 헷갈려서 '난 고시학원 갈 때마다 오금 저린다' 하고 외웠었다. 주마다 외워댄 탓인지 오금 저린 기분이 정말로 내 것이 되어버린 듯했다.


얼리버드들만 사나 싶었던 새벽 오금행 지하철에서 사람들은 대체로 피곤에 찌든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내 얼굴인지 네 얼굴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던. 그런 서울.

당일치기로 서울다녀오는 일정이라 점심식사를  시간만 났다. 채식 톡방에서  군데 추천을 받았는데 고르고 골라 몽크스부처로 갔다. 들깨 크림 파스타, 참나물 파스타, 넛츠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비건 파스타가  정도로 묵직한 느낌을 낸다니. 서울엔 몽크스부처가 있구나. 부럽다 서울.

재미공작소에서 공연을 했다. 단란한 분위기의 조그만 공연장엔 처음 보는 분도 있고 정든 인연도 있었다. 여유는 친정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는데. 기를 써야 살아지는 세상에서 친정 같은 곳이 있다는 건 감사한 일이다. 오늘도 우리 노래를 세심히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 소중했다.

서울은 문자도 그림도 소리도 넘치는 도시다. 하루 종일 온갖 자극에 휩싸여 힘에 부치기도 했지만, 제주로 내려가는 비행기에 오르니 힘듦은 금세 잊고 수많은 얼굴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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