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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설빈 Feb 04. 2023

보파의 대만 여행 꾸러미

보파는 내 입맛의 지평을 넓혀주는 친구다. 고수 페스토, 우엉채 볶음,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비건 요리 등 보파의 요리를 맛보며 세상에 이런 맛도 있구나 했다. 먹어본 적 없거나 싫어했던 재료의 가능성을 알게 되고 모험심이 생겼다. 만날 때마다 혀의 세계가 확장되는 체험을 하게 되는 여행 같은 친구다.


공연 일로 서울에 올라갔을 때 대만에 막 다녀온 창원을 만나 마작을 배웠다. 창원이 마작을 가르쳐주며 대만에서 먹은 참깨 비빔면이 잊히질 않는다면서 극찬을 했다. 게다가 비건이라며. 맛잘알인 그의 묘사를 따라 열심히 상상하면서 군침을 흘렸다. 여행을 가고 싶다고 생각하면 일도 있고 어쩌고 하면서 현실적인 장벽들이 빠르게 앞다퉈 나오는데, 친구들의 여행 얘기는 갈증을 몇 배로 튀긴다.


그러다 보파가 SNS에 대만 여행 꾸러미를 받고 싶은 사람은 신청하라고 올린 글을 보게 됐다.

보파의 소소한 여행꾸러미가 그리우신 분 계신가요?
여행하며 가진 키워드, 인상적인 장면과 맛들, 당신이 주신 키워드를 조합하여 선물꾸러미와 손 편지를 보내드려요. 대만에서는 주로 잘 먹는 것에 집중하며 지내고 있어요. 거리의 만두집은 지나치질 못하고, 초두부의 냄새와 고량주에 취하기도 하고, 아! 대만 아보카도 사이즈는 정말 남다르고요! 이틀 전엔 친구의 요청으로 막걸리를 빚었어요. 대만의 맛과 향의 재미난 선물을 받고 싶은 분이 계시다면 세 분 정도만 진행해보려고 해요.


먹을 것과 여행 얘기에 취약한 나는 바로 신청했다. 만두랑 초두부, 고량주에 대만 아보카도랑 막걸리... 꾸러미를 받으면 곧장 대만에 있는 기분이 날 것 같아 꼬드김에 넘어가고야 말았다. 나는 세 가지 키워드를 [비건, 향신료, 파스타]로 정해서 알려주었다. 그때가 1월 중순쯤이었다.


어제 보파의 대만 여행 꾸러미를 받았다. 택배 박스를 열자마자 노랗고 빨간 부적이 눈에 띄어 확 낯선 느낌을 받았다. 박스 안에는 빨간 산초, 소분한 큐민소금과 녹색 산초가루, 마라장, 장미홍차, 참깨 버섯 비건스튜, 참깨 비빔면(태화전 마장면), 비건 밀크티가 있었다. 재료와 제품에 귀엽게 메모가 붙여져 있어 알기 쉬웠다. 마라장은 뚜껑을 열지도 않았는데 향이 강렬했다. 2월 비건 요리에 활용해 봐야지.


손편지에는 보파가 경험한 대만 이야기와 꾸러미에 뭐가 들어있는지 소개하는 이야기가 써져 있다. 보파는 대만 사람들이 빨간 종이에 새해 소망과 안녕을 적어 대문과 방문에 적는다며 나에게도 복을 전해주었다. 대만은 우육면, 루오판, 곱창국수, 샤오롱빠오, 딤섬 같은 육류요리가 발달한 곳인데 반해 채식 문화에 접근이 쉽다는 얘기가 있었다. 제품 표면에 보기 쉽게 비건임을 명시해 놓았으니 구매가 편리할 것 같다.


창원이 극찬하던 참깨 비빔면(태화전 마장면)을 먹었다. 보파도 메모에 가장 맛있다며 적어놓아 기대가 부풀었다. 처음 끓일 때는 소면이랑 비슷한가 싶었는데 6분 정도 끓이다 보니 가벼운 칼국수 같은 모양새가 됐다. 소스 재료로는 참깨 페이스트(마장), 맛간장, 고추기름이 있었다. 참깨 페이스트는 곱게 갈려 아무 간이 되어 있지 않았고 맛간장은 달았다. 고추기름에는 마라 향이 나는데 그냥 마라소스인가 싶기도 하다. 면이 다 끓으면 소스와 같이 비벼먹으면 된다.


이제껏 만들어 먹었던 참깨 비빔면은 보통 참깨를 갈고 간장, 레몬즙, 당류를 넣어 가볍고 새콤하게 먹었는데 태화전 마장면은 예상보다 훨씬 무게감이 있었다. 참깨 페이스트에서 꾸덕하게 고소한 맛이 나고 고추기름에서도 독특한 향과 맛이 감칠맛 난다. 여유는 우리나라 비빔면을 먹는 느낌이라기보다는 파스타를 먹는 느낌에 더 가깝다고 했다.


면 두 개를 끓여 둘이 나눠 먹었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아 점점 물렸다. 익숙하지 않은 느끼함에 적응하며 다 먹고 나니 보이차가 절로 당겼다. 중화권 차 문화가 이렇게 발달한 걸까. 느끼한 거 먹고 물려서 차 마시고 개운해지면 또 느끼한 거 먹고 반복하면서.. 어쨌거나 덕분에 대만스러운 점심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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