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키우면 매 번 죽였다. 싱싱한 초록들이 갈변하며 살아있는 사체화 되어가는 모습을 망연자실 바라보다 결국 뿌리채 뽑아 돌돌 뭉쳐 폐기했다. 빈 화분은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날 따로.
마음을 어수선하게 만드는 일도 그렇다. 마음을 정리하던지 그렇게 만든 원인을 그때 그때 가지치기 하며 정비하면 되는데 말라가는 화분의 식물을 바라보듯 우물쭈물 하다(참다) 결국 '끝장내기' 라는 결론을 짓고 만다. 게다가 그 후의 액션은 놀랍도록 신속하다. 죽은 건 버리고 화분은 재활용 쓰레기로, 와 같이.
'내 마음 가는대로 한다=나는 자유롭다' 란 뜻은 아닐 것이다. 그걸 깨닫게 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진정한 자유는 감정의 영역이라 그어둔 선에서 스스로 해방되는 순간부터 명명될 수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삶이 나는 늘 감옥처럼 느껴졌던가. 죽음을 축복이라 여기던 시절 그랬다. 감각의 제국에 사로잡혀 사는 삶보다 칠흑같은 침묵으로 덮인 너머의 곳이 훨씬 자유롭게 보였다.
삶이란 사로잡힘의 연속이다. 그 후 다가온 도취가 일으킨 숙취를 잊으려 우린 또다른 도취 꺼리를 찾고는 한다. 이 전보다 더 짜릿한 자극을 갈망하며. 그러나 고통을 소거해주는 것들에는 자주 부작용이 숙명처럼 따라왔다.
식물을 키우면 매 번 죽였다. 그런데 자꾸 초록이 선연한 나무를 선물 받고싶다. 아니 거짓말이야. 실은 더이상 나무 선물 같은 건 받고싶지 않아. 다시는, 절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