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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Nov 11. 2020

Lewina's 책일기, 책읽기

한강 <희랍어 시간>

작가 한강의 소설을 거의 읽었지만, 그 중에선 두번 이상 읽은 작품도 더러 있지만, 고백하자면 나는 그녀의 소설을 그다지 애정하지는 않는다.

이 무슨 악취미인가 싶지만서도 나는 애정하지 않는 그녀의 글을 읽는다. 마지막 한글자, 마지막 문장부호 하나까지. 한강의 고통을 나열하는 방식은 나직하나 지독할 정도로 상세해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숨쉬기를 멈추게 된다. 마치 쇠꼬챙이처럼 마른 여자가 화장끼 하나 없는 얼굴로 눈을 촥 내리 깔고서 입술을 거의 움직이지 않은채 실은 본인이 얼마나 아픈지 나를 앞에 두고 끝없이 토로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그러니 내가 악취미랄 수 밖에.

한강의 장편소설 '희랍어시간'을 읽다보면 예전에 내가 글읽는 법을 잃어버렸던 어떤 시절이 떠오르는데, 정확하게 말하자면 글읽기를 하지 못했다기 보다는 활자를 읽긴 해도 그 의미를 파악하는 뇌의 어떤 회로가 고장났다고 하는 쪽이 맞을 것이다. 즉, 희/랍/어/시/간 이라고 읽을 수는 있어도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위해선 연거푸 그 단어를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다.

나는 네다섯살 무렵 엄마가 늘 읽어주던 동화책을 통으로 암기해 한글을 독학으로 떼었고, 그 후 밥상머리에서도 책을 놓지 않았을 만큼 일종의 활자중독자였다. 그런 내가 글의 의미를, 단어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병증에 빠졌다는 사실은 상당히 큰 쇼크였다. 이런 걸 소위 난독증이라 한다던가. 당시 구남편과의 관계로 내 정신이 피폐해 있기도 했지만 혹 매일 밤 불면을 해결하기 위해 마셔대던 알콜로 인해 뇌세포가 몽땅 파업을 결정하고 내 두개골 안에서 떠난건 아닌가 싶어 몹시 무서웠다.

그래서 시작하게 된 것이 페이스북이다. 그리고 몇 달이 지나 내 난독증은 극적으로 뇌세포와 합의를 마치고 해결 국면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근무를 해주고 있다. 아 참, 그래 이 자리를 빌어 잠시 감사의 인사를 남겨본다. 다시 와줘서 고마워.

다시 한강의 이야기로.
인간은 몰락의 예감을 두려워한다. 몰락은 소멸이자 잊혀짐으로 가는 터널 속 기찻길 이니까. 어느 평론가가 썼듯이 한강은 그 몰락을 지나치리만큼 아름다운 글로 나열하는 작가다. 그래서, 그래서 하는 말이다. 애정하지는 않지만 아낀다. 그 누구도 고통을 그토록 일정한 속도와 동일한 무게로 끝까지 말하는 사람은 잘 없으니까. 때때로 고마운 것이다, 파업을 마치고 돌아와준 읽기 전용 뇌세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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