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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o Jieun Lewina Nov 10. 2020

한음절의 위로, 술

독주가 어울리는 계절

공기에서 낯선 계절의 향기가 맡아진다.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역사의 한 가운데서 우리의 여름은 우왕좌왕과 오리무중의 향연과 함께 산산히 사라졌다. 그러나 계절은 마음먹기에 따라 태도를 바꾼다거나 다가오는 속도를 늦춰주는 법이 없어 어느새 야밤에 울어대는 벌레의 음색과 데시벨은 바뀌었고 창문을 여는 횟수보다 닫는 횟수가 늘었다.

그렇다, 독주가 어울리는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주정뱅이에겐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마셔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지만 주종 만큼은 확실히 계절을 타거든. 식도를 태울듯 타고 내려가는 알콜 도수 40도를 웃도는 호박색 액체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계절성 센티멘탈을 더없이 짙은 세련됨으로 바꿔주지 않던가. 멋진 폰트로 레이블 가득 잔뜩 쓰여진 알파벳의 의미따위  몰라도 묻어둔 우아함에 불을 댕겨주는 건 서양의 술들이 지닌 미덕이다.


그래, 딱 두잔만 마시자. 어느 스피크 이지 bar의 바텐더에게 얻어온 스포이드로 생수를 허세롭게 샷 글라스에 두어방울 떨어뜨린 것으로. 붉다 못해 터질듯 과숙된 토마토와 치즈, 햄을 꺼내 카프레제 샐러드를 코스프레한 안주도 한 접시 휘리릭. 흠, 그럴듯 한걸.

이런 밤엔 쓰레빠 신고 쿵쿵 내 집 문을 두들기는 소울메이트(라 쓰고 알콜메이트라 읽는다)가 간절하다. 물론 화장을 벗긴 내 얼굴과 꽃가라 가득한 아줌마 잠옷을 너는 견뎌야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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