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기다리다

by 자하

03. 기다리다


동사 어떤 사람이나 때가 오기를 바라다.




기다림은 바라는 마음이다. 소망하기에 존재할 수 있다.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 그러나 슬픔보다 희망에 마음을 둔 상태. 동사지만 형용사에 가깝고, 완료형보단 진행형의 단어이다.

나는 기다린다는 단어에서 우리집 강아지 보리를 떠올린다. 보리는 늘 기다린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보리는 창밖을 내다본다. 그래봐야 몇 해 산 게 전부건만, 비가 오면 산책을 나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고층 아파트에서 이중창 너머의 빗줄기는 잘 보이지 않는다. 뿌연 하늘만 하염없이 쳐다보는 것 같다. 보리가 정말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지는 알 수 없다. 그저 평소와 다른 창밖 풍경에 시선을 빼앗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가 들면 보리는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본다.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에 이번에는 내가 시선을 빼앗긴다. 왕! 가볍게 짖는 소리에 조그마한 설렘이 어려 있다.


간식이 먹고 싶을 땐 마주보고 앉는다. 가르친 적도 없는데 눈을 빤히 쳐다보며 마음을 알아주길 기다린다. 어쩌면 간식을 주기 전 기다려! 외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애달픈 눈으로 한참을 바라보다, 어떻게 해도 마음을 알아주지 않으면 발을 동동 구른다. 앞발로 허벅지를 톡톡, 몸을 일으켜 팔뚝을 톡톡. 여기까지 해도 통하지 않으면 냅다 뽀뽀를 한다. 애가 닳은 강아지에게 뽀뽀를 받고도 간식을 내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 보리는 일 미터쯤 떨어져 쳐다본다. 눈치 빠른 강아지는 자신과 함께 나갈 외출과 용무를 위한 외출을 구별할 줄 안다. 용무를 위한 외출 준비를 할 때 보리는 꼬리를 흔들거나 짖지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보리는 로션을 바르고 옷을 갈아입는 행위가 자신과 무관함을 안다. 안녕, 다녀올게. 인사를 남기면 그제야 살랑 꼬리가 흔들린다. 토도독, 작은 발소리가 현관 앞으로 다가온다. 닫히는 문틈으로 고개를 기울인 작은 눈망울이 보인다. 나는 기어이 다시 문을 열고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아까보다 빠르게 꼬리가 흔들린다. 진짜로 다녀올게, 이따 봐. 문을 닫으며 보리의 낮 시간을 상상한다. 다녀와서 방석을 만져보면 뜨끈뜨끈할 것이다.


보리는 기다림을 아는 강아지다. 기다림을 늘 이어가고 있다. 퇴근 후 현관문을 열면 어떻게 알았는지 보리가 문 앞에 서 있다. 파드득 몸을 턴 뒤 빙글빙글 돈다. 기다렸더니 정말로 돌아왔네! 온몸으로 외치는 보리에게 기다림은 희망이다. 행복 직전의 문턱이다. 그러므로 기다림은 슬픈 단어가 아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 내게도 기다림은 기쁨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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