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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ar 15. 2018

27. 보통의 것

내게 쏟은 한 달, 그 시간에 대한 이야기

내 딸 순수는 잠들기 전에 내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엄마, 나 잘 때까지 자면 안 돼. 내가 자도 엄마는 자면 안 돼. 알겠지?” 


자기가 잠이 들기 전에 내가 잠이 들어버리면 어둠 속에 혼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무서운 마음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잘 안다. 할머니와 한 방을 쓰던 어린 시절 나보다 먼저 할머니가 잠에 든 날이면 내가 항상 하던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느껴지는 무서움과 두려움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나는 순수의 이 부탁을 거절할 수 없다.  


하지만 순수가 늦게까지 잠들지 못하는 날이나 내가 너무 피곤한 날에 순수보다 먼저 잠들지 않기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누워있으면 더 졸리니 앉아서 자장자장을 하거나, 휴대전화를 보며 페이스북에 괜히 좋아요도 눌러보지만 그렇다고 쏟아지는 잠의 속도가 줄어들진 않는다. 이럴 때면 육아가 무엇인지 인생이 무엇인지 갑자기 내 삶 자체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는 사실 잠이 아주 많은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체력이 떨어지면 무엇을 먹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나는 무조건 잠으로 부족한 체력을 보충해야 한다. 하지만 육아를 전담하는 사람에게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다른 사람들도 자고 싶을 때 자고 싶은 만큼 잠을 자면 살아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이 육아를 전담 마크하는 사람들 보다 나은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그들은 적어도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엔 타의에 의해 몇 번씩 잠에서 깨진 않는다는 것이다. 아기들은 생각보다 잠에서 자주 깬다. 꿈을 꾸거나, 배가 고파도 깨지만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잠에서 깨 울음으로 의중을 알 수 없는 의사를 표현한다. 옆에서 자던 사람은 그 때 마다 함께 일어나 아기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체크하고 불편함을 해소 시켜 준 뒤 다시 잠들 수 있게 해야 한다. 몇 년 동안 새벽마다 이런 일을 두 세 번씩 겪게 되면 원하는 것이 참 소박해진다.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자고 싶은 만큼 실컷 자는 것이 소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페인에 도착하고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쏟아지는 잠을 참을 필요가 없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눈 앞에 펼쳐진 화려한 건물과 좋은 날씨 혹은 맛있는 음식들과 함께 한 그런 드라마틱한 순간이 아니었다.  자고 싶을 때 잠이 들고 잠자는 중간에 깨지 않아도 되는 그 소박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나니 더 이상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나는 이미 너무 신이 난 상태가 되어 주변의 모든 것을 사랑하게 되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길가에 널려있던 개똥도 귀여워 보일 지경이 된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가 원하던 것은 이렇게 보통의 것이었다. 잠들지 않는 아이를 재우며 졸린 눈을 비비던 지난 날들 중 어느 하루 누군가 내게 “오늘은 내가 아기와 함께 잘 테니 오늘만큼은 혼자 자고 싶은 만큼 푹 자도록 해.” 라는 말을 한 번쯤 해주었다면, 어쩌면 난 스페인에서 느낀 이 '신남'을 그 때 이미 느끼고 내 일상의 모든 것을 더 빨리 사랑하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뭐 지금이라도 일상을 더 사랑하게 됐으니 됐다. 각자의 역할을 열심히 하느라 바빴던 날들이었다. 나만 생각해 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않겠나. 여기 이곳에 오는 것을 이해해 준 것만 해도 많은 것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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