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hd는 성격이 급해서 뭐든 너무 서두르다가 다 놓칠 것 같지만, 그게 아니다. 느리다. 느려도 너어어무 느리다. 이러다 부모 속이 펑하고 터질 것 같을 때쯤 겨우 무언가 끝나 있을 수 있거나, 또는 그때 막 시작할지도 모른다.
보통은 샤워가 그렇다. 샤워하라고 하면 30~40분씩 걸린다. 한 30분 동안 물만 틀어놓고 있기도 한다. 속이 터져서 부모가 해줄 수도 있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지. 그냥 시간이 흐르길 기다린다.
그럴 땐 무얼 하느냐고 물어본다. 그러면 제정신을 차리면 좋으련만. 아이의 뇌는 '무얼 하느냐?'는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가동을 한다. 그래서 자기가 무얼 하는지 대답을 못한다. 그래서 다시 물어본다. 대답이 없다. 또 물어본다. 대답이 없다. 이쯤 되면 열폭해버린다.
대답이 없는 이유는 대충 이런 이유 때문이다. 첫 번째 질문이 뭐였는지 기억이 안 난다던가(물론 질문은 변하지 않았다), 계속된 질문에 당황해서 뇌 정지가 왔다던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대답을 고르고 고르다가 타이밍을 놓쳤다던가, 하라는 것은 안 하고 딴짓했다고 혼나면 어떡하지? 라고 다른 고민에 빠져들었다던가.... 하여튼 질문과 상관없는 수만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서이다.
그럴 때 상담 선생님은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해보길 권했다. 머릿속이 복잡하고, 정보처리 속도가 느린 아이이니, 예, 아니오로 대답하는 질문을 하고, 또는 질문을 받고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면 "잠깐만요 생각 좀 해보고요." "생각 중이에요"라는 답변을 알려주라고 하셨다.
'예/아니오'로 대답할 답변을 유도하는 질문은 나도 머리를 굴려야 해서 어려웠다. 그래서, "샤워하러 갔는데, 지금 씻고 있는 거 맞니?"라고 질문해야 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문제. 아이가 무조건 "네."라고 한다는 것이다.
또는 "놀지 말고 얼른 씻어라"라고 하면, "네" 하고 계속 논다. 이럴 때 '무시하는 것 같다.'라는 느낌을 받게 된다.의미 없는 대답을 한다. 일단 급한 불 끄기인 것 같다. 지켜보고 있는 내 마음은 속이 터지다 못해 문드러지는데.
원래 하려고 했다.
부모가 화내거나 왜 제대로 하지 않느냐 따지고 들면 하려고 했다는 대답이 온다. 그 말에 더 화가 난다. 변명하는 것 같고, 거짓말하는 것 같고. 한참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어디서 거짓말이냐며 몰아붙이고는 했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했다. '느린 아이'라는 것을. 여기서 '느리다'는 것은 '정보 처리 속도'가 느리다는 것이다. 정보를 받아들이고, 적재적소에 정리하고, 우선순위를 선별하고, 그에 따라 처리하는 것을, 보통 사람은 찰나 동안 해치우지만, adhd는 못한다. 어렵다. 오래 걸린다.
'하려고 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을 것이다. adhd 아동을 대할 때는 아이의 속도를 따라줘야 한다. 방임하면 천덕꾸러기가 되고,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키우려 하면 바보 멍청이가 될지도 모른다. 방임은 아이의 성장을 돕지 못해 나이에 맞게 성장하도록 도울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아이들처럼 키우려 들면 끊임없는 비교에 자존감만 떨어질 테니 오히려 스스로가 자신을 포기해버리기 때문이다.
아이를 위한다면 아이의 속도를 파악해야 하며, 아이의 속도를 물어봐야 한다. "언제까지 끝낼 수 있겠니?" "네가 약속한 시간까지 10분이 남았는데, 그 안에 할 수 있겠니?" 등 아이와 소요시간을 협의하고, 딴생각에 빠지지 않고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아이에게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질문이 잘못되었음을 자각해야 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맞추는 게 아니라, 부모가 아이 눈높이에 맞추어야 한다. 또는 너무 많은 말폭탄을 던지는 것은 아닌가 의심해봐야 한다. 열 단어 이내로 간단명료하게. 명령은 명령으로, 질문은 질문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지금 이 책을 여기다 두면 되겠니 안 되겠니? 네가 본 책은 바로바로 치우라고...."(×)
"아들~ 네가 읽은 책 치워."(명령)
"아들~ 네가 읽은 책이 그대로 있네? 어떻게 해야 할까?"(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게 하는 방법)
아이가 내 명령을 바로 따르지 않는다 하여 화를 낼 필요는 없다. '언제까지 치울래?' '조금 서둘러 치웠으면 좋겠어. 발에 채여서 불편하네.' 이렇게 부모도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 말해야 한다.
그동안 반항인가, 무시인가, 멍청한 건가.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이제 아이의 속도를 맞추려 노력하다 보니 아이가 '어쩌면 나도 조금은 괜찮은가 봐' 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다. 부정적이고 우울하고 자기 비하적인 생각이 그득한 아이였는데, 조금 밝아진 것을 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