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품있는그녀 May 09. 2024

이혼하는 날

우리의 마지막 날

그날은 날씨도 참 좋았다. 우리는 법정 앞에서 만나기로 했고, 너무 늦게 가면 순번이 늦어져 오래 기다려야 한다며 일찍 오라는 남편의 말에 1시간이나 일찍 갔다. 부부 양쪽이 모두 신분증을 지참하고 방문해야 순번표를 주었다. 우리는 1번을 받았다.


그 후로 많은 부부가 따로 왔으며, 거의대부분 남자가 먼저 와서 기다렸고, 이후에 아내가 오면 접수할 수 있었다. 우리들은 많이 어색했지만 헤어질지라도 차라리 익숙한 부부가 나은지라, 낯선 사람들 속에서 함께 앉아 대기했다. 그것이 참 아이러니했다. 이 법정 앞 대다수의 부부가 사이가 안 좋아 헤어질 텐데, 그래도 부부라고 모두들 함께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법정 안에 들어가고 나오는 순간 남이 되어 나온다.


그 많은 커플들이 법정 앞을 문전성시를 이룰 만큼 많아서 놀라운 한편, 이런 형식적인 판결을 꼭 재판을 통해서 해야 하나 싶었다. 하지만 부부사이 이혼에 따른 재산분할이나 자녀 양육과 같은 민감한 문제가 따르니, 재판이 아니고서는 어려울 것이다. 부부간에 누구 하나라도 이혼 이후의 협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도 법으로 각자의 권리와 의무를 보장해 줄 테니 말이다.


이혼 재판이 끝났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정해진 기일 안에 시청이나 관할 주민센터에 가서 신고를 하지 않으면 재판은 무효가 된다. 아마 급한 일정이 없는 한 대다수는 바로 신고를 할 것이다. 우리도 시청으로 바로 갔는데, 아주 능숙하게 이혼신고서 작성 안내를 도와주는 직원이 있었다. 매주 이 날 이 시간은 이혼 신고를 하러 오는 날임을, 그래서 아주 익숙하게 업무를 처리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몇 가지 법률적인 정리를 하고 나니 점심시간이라 함께 밥을 먹으러 갔다. 밥 먹는 자리에선 어색할 것 같아서 함께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마지막 말을, 나의 마지막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얼마 전 정리한 나의 마음, 그것은 고마움이었다.


그동안 고마웠어.


그 순간 왜 눈물이 났는지 모를 일이다.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터져 꾹꾹 눌러 참아도 흐르는 눈물이 도무지 잡히지가 않았다. 남편은 애써 감정을 누르며 그저 내 어깨에 손을 툭 하고 올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어떤 말도 없었지만 남편의 그것이 나에 대한 작은 위로임을 내가 알았기에 더욱 슬펐다.


나는 그저 아이들의 근황을 전달하며 우리의 침묵을 깨트렸다. 그리고 헤어지면서 남편은 빵을 한 아름 사주었다. 아이들이 평소 좋아하던 빵으로 하나 가득이었다. 아이들 입으로 음식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먹을 것을 챙겼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이전 06화 미워할 것인가 용서할 것인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