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성인 adhd이며, adhd 아들을 키우는 엄마다. 아이의 adhd를 알게 되고 adhd에 대해서 공부했으며, 나도 adhd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신경정신과에서 정식으로 adhd진단을 받았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adhd 자가진단 테스트로 검사하고 '아, 나는 adhd인가 보다' 결정한 것이 아니라, 전문 검사장비를 통해 adhd임을 확인받았다는 말이다.
나는 그전까지 안개 낀 숲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어느 날은 맑기도 했지만 거의 대부분 어둑했다. 그래서 나무뿌리에도 걸려 넘어지고, 산비탈에서 굴러 떨어지기도 했고, 산짐승과 조우하기도 했다. 물론 은유적인 표현이다. 30대 후반이 되는 나이까지 그렇게 안개 낀 숲에 사는 느낌으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은 그리 평탄하지 못했다.
그중에 아직까지도 힘이 드는 것은, 부모님이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도 구박받으며 살았고, 문제아였으며, 간헐적 천재로 살아왔다. 그래서 더욱 천재성과 바보성의 차이가 극명했고, 천재성의 기대감과 바보성의 실망감을 한 몸으로 전부 다 겪었으며, 그것은 고통 그 자체였다. 그리고 나 자신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삶을 살아왔으며, 그런 나를 부정해왔다.
그것이 나의 자존감을 결정했다. 구박받는 자존감. 부모를 실망시키는 어리석은 자녀라는 자존감. 무엇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하는 자존감. 좋아하는 친구가 나를 싫어하는 자존감. 사람들로부터 받아들여지지 않는 자존감. 잘하는 것은 많은데 이렇다 할 타이틀 하나 없는 자존감. 언제나 실패를 반복하는 자존감. 나의 자존감은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렇게 내 마음에 물들어있었다.
성인이 되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부모가 주었던 멸시와 타박들은 모두 고스란히 남아서, 전의를 상실하고 알몸으로 나부끼게 만들었다. 부모도 인정해주지 않는데, 부모도 알아주지 않는데 자녀가 세상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나는 그렇게 내게 상처 준 모든 것들을 원망하며 살게 되었다.
원망을 안고 살아가는 삶은 고달프다. 이해받지 못했다는 아픔, 멸시와 조롱을 받았다는 자괴감, 무엇도 잘 해낼 수 없다는 좌절 등이 나를 포함한 모든 것들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세상을 향해 어둠을 뿌리는 나의 마음샘은, 아무리 퍼내도 작아지기는커녕 더욱 커지기만 했다. 이미 오염된 수원은 맑은 물을 만들어낼 재간이 없다. 나의 마음샘이 오염되어 맑아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상처 받은 영혼은 그렇다. 그렇게 오염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선한 마음을 갖고 싶어도, 어느 순간 불숙 튀어나오는 어둠. 그것은 나를 감싸는 기운이 된다. 부정적인 마음. 좌절하는 마음. 미움, 시기, 질투. 그런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이 감정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형태가 되어 타인을 공격하게 된다. 그렇게 나는 트러블 메이커가 되어 있었다.
adhd는 스스로 자신이 지고 있는 무게를 깨트리고 나오기가 어렵다. 새가 알을 깨고 나오듯 자신의껍데기를 깨고 나와야 하는데, 부모의 믿음이라는 양분 없이, 부모의 이해라는 따뜻함이 없이는 스스로 그 굴레를 깨고 나오기가 어렵다. 영원히 굴레에 갇혀 성장하지 못하는 아이인 채로 어른이 된다. 그래서 미성숙한 자아를 갖게 된다.
지금도 주변을 잘 살펴보면 보인다. 그렇게 어린아이인 채로 성장한 어른 아이들을. 그래서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러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쳤다는 인식은 없다. 지극히 이기적으로 성장한 그들은 남을 이해하기보다 자신이 더욱 이해받기를 바란다.
나도 그런 축에 속했다. 스물이 넘으면 어른인 줄 알고, 그렇게 기고만장하게 살았다. 세상 모두가 적이었고, 세상 모든 사람들과 싸우려고 들었다. 그래서 상대를 비판하는 것을 서슴지 않았고, 나를 비판하는 것에는 그렇게도 가시를 세웠다.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게 된 시기는 최근 3년이 안 됐다. 그동안 나는 낮아졌고, 고개를 숙였다. 지나온 시간들이 매우 부끄러웠으며, 나의 어리석음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후회했다. 하지만 후회는 또 나를 파괴하는 자괴감으로 돌아와, 내적인 상처를 주었다. 나는 나를 공격하지 않고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나의 아픈 마음들을 치유했다. 나의 상처 받은 영혼을 치유했고, 나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나에게 이전처럼 나쁜 운이 오지 않게 되었다. 좋은 운이 오기 시작했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깨달았다. 세상이 나를 받아들여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세상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을. 그 날은 무척 슬프고도 고요한 날이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며 깨달았다. 내 문제를 내 스스로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어릴 적에는 물론 부모님이 해주어야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나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동안 누군가 나를 치유해주기를 기다리며, 사람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사람으로부터 치유받으려고 노력하다가 오히려 더 많이 깨지고 무너졌다는 것을 알았다.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고,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오직 나뿐이며, 그 모든 나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누구도 나 대신 나를 치유할 수 없음을 받아들였고,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을 힘들게 힘들게 겪어냈다. 그리고 이제야 어린 시절의 아픔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악의 근원을 끊어냈다. 드디어 수원을 정화하게 된 것이다.
아이의 adhd?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느 가정에나 크고 작은 문제들은 존재한다. 나는 그중에 아이에게 adhd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모가 된 것뿐이다.나의 adhd도 당신의 그 어떤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 문제에 빠져들어가서는 안 된다. 그 문제가 당신을 잠식하게 두어서도 안 된다.
부모님께도 이해받지 못한 삶이 뭐 그리 행복하겠냐고 자괴감에 빠질 필요도 없다. 부모가 사과한다고 해서 상처 받았던 과거로 돌아가 지워버릴 수는 없다. 그것은 그것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자. 언젠가 사과받는 순간, 망가진 상태가 아니면 그것으로 족하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당신을 괴롭히는 그 모든 순간의 문제들. 그것들을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동안 잘 견뎌온 자신을 다독여주며, 앞으로 나아갈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대단한 것을 바라며 큰 코 다치지 말자. 소박한 꿈을 꾸며 하나씩 이루어나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