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를 사도 제대로 돈을 주고 사."
남편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흘려 넘긴다. 어차피
그 말을 따를 생각이 없으므로.
내가 구제 옷가게를 드나든 건 운영하던 사업이 기울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의식주 세 가지 중, 가장 손쉽게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건 의衣였으니까.
처음에는 남이 입던 옷을 산다는 게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고 불쾌감마저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마음을 모른 체 속을 긁는 남편이 속 없이 보였고 야속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끼느라 구제를 사 입는다는 말만은 차마 하지 못했다.
그건 내 자존심이 건드려지는 느낌이었으니까.
뭐든 처음이 중요한가 보다. 한 번 두 번 그리고 한 해 두 해 거듭될수록 찜찜하던 내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치듯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 번은 꼭 들르는 나만의 단골 명소가 됐다.
고객 중에는 생활수준이 높은 사람들도 꽤나 있다. 그들은 도대체 무슨 심사일까.... 했는데, 저마다의 소비 취향인 걸 알게 됐다. 값싼 옷을 한꺼번에 여러 장 사서 바꿔 입는 것을 즐기는 사람. 맘에 들면 입었다가 싫어지면 편하게 남 주는 걸 좋아하는 사람. 명품 구제만 사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치장하기 좋아하는 사람 등 가지가지다.
처음에 옷 값을 아낄 량이었던 내게는 또 다른 이유 하나가 더 생겼다. 일단 구제는 누구에겐가 한 번 선택받은 옷이라는 점이다. 말하자면 일차 걸러진 셈이니 선호도 제로 등급은 면한 상품이다. 게다가 대책 없이 꽂히면 앞뒤 재지 않고 사는 쇼핑 습관 탓에 후회도 잦았지만 구제는 그런 피곤한 고민은 노 땡큐.
아, 그렇다고 새 옷이 싫다는 건 아니다. 비자금으로 사주겠다고 남편이 콜 하면 한 가랑이에 두 다리 끼고 달려 나갈 거니까.
사다 걸어둔 옷이 여전히 못마땅한가 보다.
남편의 흘끔거리는 눈빛이 곱지 않다.
그래서 어쩌라고?
공금으로 사야 한다면 난 여전히 구제가 좋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