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를 이탈하고 싶은 열망일까. 풀들이 흔들어대다가 눕다가 일어서다가 한다. 아니 어쩌면 바람을 경배하는 춤사위인지도 모르지만.
가끔씩 찾게 되는 곳. 장미 울타리가 둘러쳐진 아치형 대문 입구를 들어서면 짐짓 들판에 들어섰나 착각한다. 날 것이어서 좋은 곳. 다듬지 않은 풀들이 내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불과 얼마 사이인데 볼 때마다 다르다. 사람의 성숙도 이 풀들처럼 눈에 뵈게 쑥쑥 자라면 얼마나 좋을까. 높은 생명일수록 성장이 더디다 하였는데 그래도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 기질 탓에 더욱 생각이 간절하다.
이 뜨락에서 최고로 기분 좋았던 것은 쑥이다. 지금껏 못 보던 쑥들이 올봄에는 여기저기 터를 잡아서 몇 차례나 캔 쑥으로 도다리 국을 끓여 먹었었다. 굳이 들판을 헤매지 않아도 도시 한가운데, 그것도 건물 옥상의 흙마당에서 쑥을 캐다니 횡재가 아닐 수 없다. 더구나 초봄에 캐는 쑥은 약쑥이라는데, 올여름 더위를 거뜬히 지난 것은 이 쑥 덕분이 아니었을까. 쑥쑥 잘 자라기도 하지만 몸에도 좋은 것이 먹으면 힘도 쑥쑥 난다 하여 '쑥'이라 이름한지도 모르겠다.
이제 뜨락은 여름 내음이 지고 있다. 낮달 맞이 꽃, 개망초, 사랑초 등 야생꽃이 한바탕 흐드러지게 널렸었는데... 장미가 시들어 갈 쯤에는 황국이 노란 꽃을 작렬하게 피웠다. 한때는 매실이 날로 통실해져 갔고 연하디 연하던 방풍나물은 성큼 방풍나무로 자라 터를 잡았다. 거뭇거뭇한 소나무 삭정이에 까치와 동박새가 쉬었다 가는 것도 한 폭의 어울림이다.
그런데 아직도 혼자 고민인 것은 멋진 이곳을 뭐라고 명명해야 할지 몰라 선뜻 이름을 내놓지 못함이다. 들판의 한 부분을 떠서 옮겨 놓은 듯하니 인위적인 느낌이 드는 정원이나 꽃밭은 마땅치 않다. 너른 옥상 일부를 차지했다 하여 옥상 마당이라 하기는 더욱 그렇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도 혼자서 자연스레 피고 지는 것들이므로... 차마 손 갈 틈이 없어서 어쩌다 묵정밭이 되었다는데 나는 여느 정원처럼 다듬어지지 않은 이곳이 너무 좋다. 그야말로 절로 자라서 자연스럽게 자연답다.
‘만물작언이불사.’라고 했던가. 만물은 절로 자라는 것이니 말을 지어 말을 만들지 말라는 노자의 말이다. 그저 눈으로 보고 감탄하고 어우러져 있으면 될 일을 마땅한 이름 붙이자고 고민할 것은 또 무언가. 언제나 하늘은 땅을 위해 있고, 땅은 그저 너른 가슴을 자연을 위해 내어주고 있는 것을.
웃으면 드러나는 치아처럼 섬돌만 남겨둔 정원이 온통 풀로 무성하다. 고개 숙인 풀 숲 사이로 걸어가자니 하례받는 개선장군이 따로 없다 싶다. 이 기분을 언제까지 누릴 량인가. 우두커니 멈춰서 하릴 잊은 사람처럼 다시 돌아보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