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인간을 발명한다.'
언젠가 읽은 책 속에서 절대 공감을 일으킨 한 마디이다. 인간은 질병을 관심하다가 의사를 발명하고, 삶을 고민하다가 철학자를 발명하고... 나는 엄마 되는 것을 고민하다가 인간다운 자식 발명하기에 안간힘을 쏟았다.
청춘. 듣기만 해도 마음이 설레는 시절. 당시 노처녀라는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열정으로 나는 석 달 열흘, 정확히 백일만에 결혼을 했다.
첫 아이는 결혼한 지 두 해가 저물어가는 11월 끝물, 가뭄의 단비처럼 내게로 왔다. 하지만 나는
한 인생이 내게로 안기어왔다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감에 힘겨워했다.
여리디 여린 분홍 피부는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것 같았고, 가늘디가는 목은 앞뒤로 튀어나온 짱구 머리를 이기지 못해 꺾어질 것 같아 불안했다.
사흘을 들여다보고 있다가 정신을 차렸다. 나에 의해 이 세상에 온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내 아킬레스건을 닮아 태어났을 유전인자가 염려되었다.
대책 세우기에 돌입했다. 당연히 나의 약점이자 단점을 닮을 확률에 대한 대비이다. 나의 고질적 기질은 대충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었다. 사소한 일에 근심하며 주저하다 보니 당당하지 못한 것. ‘좋다’와 ‘싫다’는 표현에 솔직하지 못한 것. 소심하여 제 몫도 제대로 못 챙기는 것.
이런 내 문제점을 처음 발견하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를 막 입학한 무렵이었다. 그때 결심한 신조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는데 이것은 젊은 날 오랫동안 나를 바꿔놓는 힘 있는 채찍이 되었다. 곤란한 상황에서 정면 돌파하기. 갈등할 때에는 저지르고 보기.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살기… 이렇게 ‘내가 되고 싶은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바꾸고 개선해 갔다. 하지만 이것은 웃물
저 아래가 흔들리면 언제라도 떠오르고 말 탁한 침전물 같은 것이어서 한 편으론 늘 불안했다.
당연히 아이를 위해서는 이 부분에 치중해야 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다는 보증은 딸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첫 순을 보였다. 일 학년 사월 하루, 아이가 학교에서 전화를 걸어왔다. 준비물인 탬버린 세트를 가져오지 않았으니 챙겨 와 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는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얄짤없이 거절했다.
그날 오후, 하교한 딸아이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는 대박이었다. 학교 앞 문구점 주인에게 가서 탬버린 세트를 빌려 사용했단다. 밤톨만 한 녀석이 문구점에 가서 정면 돌파한 한 수는 나도 생각지 못한 방법이었다.
다음으로 yes와 no를 분명히 하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언어 사용에 있어 예민하게 대처했다. 지시할 때에는 해라체를 금하고 ‘해줄래?’ ‘하는 건 어때?’라는 식으로 물었다. 당연히 그것에 반한 대답이 돌아왔을 때는 까닭을 들은 다음 타당하다면 반드시 기다려주거나 양보해 주었고 강제집행이란 결코 없었다.
이해와 타협만으로 자녀를 키우는 것은 일종의 도를 닦는 이상의 수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몽둥이 하나면 말이 필요 없던 나의 어린 날의 억압을 반복하지 않고 싶어서 오롯이 이 두 수레바퀴를 축으로 나는 아이를 인내하고 이끌어냈다. 누군가는 이렇게 처신한 나를 탓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나 지금의 결과는 과정의 정당성을 대신 말해주는 게 아닐까. 구김살 없이 밝고 솔직한 청년이 된 딸을 보며 나는 그녀가 부럽기까지 하다.
사람 앞에 당당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접하는 일에 면역을 길러주어야 했다. 나는 아이가 혼자 걸을 수 있을 때부터 종이쪽지를 손에 쥐어 구멍가게에 심부름을 보냈다. 이 일은 아이가 가족 외에 세상과 접하는 최초의 소통이었다. 짧은 언어가 구성될 즈음에는 기회만 있으면 남 앞에서 말하기를 시켰다. 간단한 한 구절 문장에서부터 차츰 문장을 늘이며 때마다 반복한 30초 스피치의 효과는 담력과 언어 구사력을 키우는 데 한몫을 했다.
낯선 장소를 혼자 탐방시킨 것은 3학년 때로 기억한다. 가까운 동네 서점이 있었지만 구태여 집에서 이삼십 분 거리에 있는 큰 서점으로 버스를 태워 보낸 이유는 합리적인 사고와 선택이라는 두 가지 훈련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다. 구입한 책을 꺼내 보이며 책 표지의 디자인 선택, 출판사, 책 값, 글자 크기, 글자의 배열, 책 두께 등 책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아이 나름의 설명은 매번 다양했다.
딸은 지금 자기만의 독특한 색깔로 채색된 멋진 성년이 되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만 제대로 키우자, 생각하며 바닥이던 날들이 언제 다 지나갔을까. 엄마의 문화가 빈 도화지 같은 아이의 장래에 혹여 해가 될세라 걱정하던 일에서도 해방되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이 제대로 된 윤리성을 지니는 일일 게다. 만약 도덕의 나침반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당당하게 키웠다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불온한 시대와 맞서서 자신을 지키는 일. 이것은 훌쩍 자라 성인이 된 내 아이가 감당해야 할 남은 과정이며 풀어야 할 과제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으로 살아보고 싶다.’
언젠가 청문회를 보면서 불쑥 내뱉던 말이 귀에 맴돈다. 그래, 부디 엄마의 문화 저 너머로 끝없이 외연을 넓혀 가거라. 힘껏 키워준 것 외에 더해 줄 것이 없는 나는 이제 자식을 안으로 품는 기도만이 내 몫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