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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by 김두선

빗소리를 들으려 겹창을 연다. 가인의 표징처럼 태풍의 흔적을 가진 창 밖의 큰 나무가 또렷이 그 해를 소환한다.



자연이건 사람이건 호되게 당한 훼손은 원래처럼 치유되기가 어려운 법일까. 웬만한 바람에는 꿈쩍도 않던 나무인데 그때 받은 충격이 아무래도 컸었나 보다. 울창하던 잎들이 아직도 제 모습을 찾지 못해 듬성듬성 속이 드러나 보이는 것이 비에 젖어 추레하기까지 하다.


그래도 꽃들의 수다로 봄은 얼마나 소란스레 오는 것인지. 동네 어귀의 매화와 모란은 피었다 진지 오래고, 성급히 꽃비로 떨어진 벚나무 아래로는 얼굴 붉힌 영산홍이, 노란 빨간 튤립이, 줄지어 눈을 맞추며 수다를 풀어놓는다. 때때로 발작하는 헛된 감정을 뭉개느라, 이 오가는 줄도 모르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나를 혹여 흉보는 건 아닌지.


숫자에 약한 탓일까. 아니면 연대순 외기가 싫어서 역사 공부를 싫어했던, 보다 근원적인 징크스 때문일까. 지난날을 해수로 기억하는 것이 내게는 늘 어렵다. 딸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한 해가 언제인지, 수능을 치른 해가 언제였는지. 심지어 내가 결혼한 해는, 또 부모님 돌아가신 해는 언제인지. 마디처럼 굵직한 사건들이건만 기억해 내려면 버릇처럼 손가락을 몇 번이나 꼽아 보고야 알아차린다. 굳이 내놓자면 주민등록번호 덕분에 가족들이 태어난 해를 겨우 기억하는 것 외에는.



그럼에도 내게 기억 가능한 한 해의 숫자가 드물게 하나 더 추가됐다. 2.0.1.8.


그해 봄, 나는 날마다 걸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고, 무작정 걷는 일만이 나를 간신히 지탱해 주었다. 산길을 걷고, 광안리 바닷가를 걷고, 이기대 갈맷길을 걷고… 눈만 뜨면 초강력 자석에라도 끌린 듯 집 밖으로 나서서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걷다가 여름에 이른 그 해는 육십 년(?) 만의 더위인가 하는 견디기 힘든 열대야가 연일 지속됐다. 일사병으로 쓰러진 이들의 기사가 심심찮게 보도됐고, 비 한 방울 오지 않는 가뭄에 타들어가는 곡식은 영상 속에서 갈라진 논바닥이 제 맘을 벌겋게 드러내 보였다.


또 있다. 여름을 밀어내고 감격처럼 가을이 찾아 올 즈음인가. 케이스에 넣어둔 기타를 꺼냈을 때 고온의 날씨 탓에 녹은 튜너가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힘없이 짓무릴 정도의 더위였음도 기억한다. 무엇보다 안팎으로 짓누르는 중압감 속에서 한증막에 갇힌 사람처럼 헉헉대던 나는, 아!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절박감에 내몰리며 날마다 주검처럼 살았다.


그해, 약속처럼 가을이 온 것은 기적이었고 달군 대지를 식히듯 연이어 세찬 태풍이 몰아쳤다. 앞 정원의 해묵은 사철나무는 그때 무성하던 잎을 거의 다 떨궜는데 아직도 그 흔적을 메우지 못해 저리도 듬성한 게다. 마음만큼 시렸던 그해 12월에는 필연처럼 내게 온 한 문우를 만나서 그나마 살 만한 위로 한 가닥을 잡았고, 일 년이 되는 이듬해 봄이 되어서야 나는 나를 짓누르고 있던 무섬증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오기 시작했다.



남들이 흔히 겪는 일을 보면서도 내게는 그런 차례가 오지 않으리라고 신앙처럼 믿던 우매함을 보게 되면서. 흔들리며 살아가는 인간의 삶 속에서 '절대'의 불가침 영역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당할 수 없는 일은 3인칭 관찰자 시점에 서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초월의 미학을 터득하면서. 그리고 지루하다는 것은 평화롭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이며 일상이 지켜지는 것은 기적이고 감사해야 할 일이라는 때늦은 발견에 도달하면서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들과 다 지나가 버리고 말 것을 영원할 것처럼 착각하며 마주하는 일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의 결국을 안다면 마음에 생긴 상처는 끊임없이 지우며아야 한다. 부분에 묶여 전체를 놓치기엔 우리네 남은 날들이 너무 짧아 아깝지 않은가.


오늘도 창 밖의 큰 나무는 계절 따라 채우고 비움으로 태풍의 흔적을 지워가고 있다. 자연에서 사는 이치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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