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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by 김두선

글쓰기를 멈춘 지가 두 달이나 되었다고?


경고장(?)이 날아왔다. 글 공간에 들어와 헤아려 보니 정말 그렇다. 사월 말에서 오월을 완전 패스한 채, 유월도 끝을 향해 내달리고 있는 중이니 말이다.

세월이 쏜 살 같다. 다시금 절감한다.


글이 쓰기 싫었다. 아니할 말이 없다고 해야 하나. 들리는 세상 소식은 갈수록 속이 아프고 시끄럽다. 보도되는 뉴스는 신물 나는 패거리 정치로 역겹고, 나라 안팎 상황은 전쟁에, 유류 파동에, 기아에, 이상 기후에, 새로운 전염병에, 극심한 경제난까지 겹쳐 희망은 휘발되어 그림자조차 없다. 세상은 정말 종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것일까.



이런 시국에 별 것도 아닌 일을 별 것인 것처럼 일상 몇 자를 풀어놓는 건 한심한 타령이거나 철없는 사치가 아닐까. 생각에 사로 잡히면 움켜쥐고 있던 말들이 어디론가 낱낱이 흩어지고 사라졌다.

그저 탈 없는 한 날이 감사했고 발가락 때를 벗기듯 하루를 벗기고 누우면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대로 영원히 눈을 감아도 좋을, 아니면 여전히 연속된 시간에 다시 나를 헌납하면서.



절필의 이유는 사람에 관심을 거둔 것도 한몫했다. 벌써 일 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잊어지지 않는 일이다.


그는 적어도 주위의 여늬 사람들과는 달랐다. 절대적이었으며 초인간적인 성품을 지닌 영적인 거인이었고 내게는 믿음의 대모였다. 나만의 편애였는지 모르지만. 이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나를 단절했다. 문자도 메시지도 씹었고 무반응으로 일관했다. 삼십 년 세월을 무 베듯 싹둑 벨만큼 그를 그렇게 만든 엄청난 이유는 도대체 무얼까.



교제란 어느 한쪽이 손 놓지 않으면 결코 끊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러지 않았고 여기까지, 라는 선을 나름 긋고 말았다. 우린 둘 다 할 말이 넘쳤나 보다. 토해내고 싶은 게 많은 만큼 입은 더 다물어지는 법이니까. 어쩌면 이해보다 필요한 건 세월일 수도.



하나를 포기하면 또 다른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그 일 이후에 얻은 또 한 번의 체험이며 터득이다. 세상과 사람 향한 무관심 속의 관심 같은 것이랄까. 웬만한 일에 화내지도 않으며 실망하지 않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 정도가 이 정도인데 이 정도는 충분히 뭐 그럴 수도 있지, 여기게 되었으므로.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고, 그래서 나쁜 게 다 나쁜 게 아니기도 하다는. 꽉 막힌 내 영혼이 개방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럴. 수.도.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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