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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시 세 끼

by 김두선

휴대폰이 울어댄다. 아이들 숙모이다. 매일 남편을 챙겨야 하는 삼시 세 끼에 유치원 교사인 딸까지

2주간 방학이라 미칠 지경이란다. 하긴 결혼한 이래로 평생 날마다 차려내야 하는 식탁이 왜 지겹지 않으랴. 저녁엔 뭐해 먹지? 오늘은 뭐해 먹지? 주부들의 하루 고민은 보통은 이렇게 시작된다.



좀처럼 더위를 타지 않는 나도 요즘처럼 습한 무더위는 진짜 힘들다. 뜨거운 가스레인지 앞에서 아침저녁 두 어 시간 남짓 섰노라면 언제까지 밥순이로 살아야 하나, 하는 푸념이 물신물신 고개를 쳐든다. 혼자 먹을 식사면 초간단도 가능하지만 남편과 함께 하는 식탁은 어쩔 수 없이 품위 유지가 필요하므로.



내 젊은 날의 아침시간은 찐 북새통이었다. 시절만 해도 자녀들의 점심 도시락은 집에서 일일이 싸서 보낼 때였고, 학원 사업으로 오육십 명 되는 유치부 아이들의 점심 반찬까지 만들어 출근해야 하는 통에 우리 집 개수대는 뒤엉킨 그릇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어느 지인 집을 방문했을 때이다. 그녀도 맞벌이 생활에 언제나 정신없어 보였다. 마침 식탁을 치우고 있었는데 눈에 번쩍 띄는 광경이 있었다. 반찬을 일일이 접시에 따로 담지 않고 큰 카파 그릇에 담은 채로 먹고는 그대로 뚜껑을 닫아서 보관하는 것이었다. 그릇 하나 덜 쓰기. 위생보다는 간편이 간절했다. 품위 유지를 주장하는 양반 같은 남편 탓에 오래 실행은 못했지만.


세상이 아무리 바뀌었다지만 7080 세대에서는 여전히 집안 살림 모두가 주부의 몫이다. 밥 짓는 것도 지겹다며 소문만 무성한 졸혼을 꿈꾸기도 하지만 복잡한 관계로 얽혀 사는 가족사에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인가. 언젠가 문해 교실 어머님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이 갑자기 떠오른다.



남편을 십 년이나 먼저 보내고 외롭지 않으세요?


삼시세끼 밥 준비에 매달려 아무 데도 못 가고 묶여 살았는데 지금은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가고 싶은 데 있으면 마음대로 다니며 날개를 단 것 같아. 얼마나 좋은데!


오십 평생 같이 살았건만 이 말이 진심인 것 같아서 약간은 쓴 맛이 돌긴 했지 이런 대답이 나오게 만든 할아버지는 어떤 분일까, 생각도 들었다.


혹여 ‘배달의 민족’을 사랑하는 이 시대의 젊은 남녀들에게 삼시 세 끼의 고민은 전설 따라 삼천리 같은 것일까… 아무튼 백세 인생이면 더 많이, 더 오래 같이 늙어가야 할 터인데, 남녀 일 가리지 말고 미리미리 앞치마를 둘러봄은 어떨까. 아내는 남편에게 엄마가 아니고, 시다바리는 더욱 아닌데 말이다.



뚝. 뚝. 떨어지는 땀방울을 손바닥으로 훔쳐낸다. 내게도 앞치마를 두른 남편을 보 날이 오게 될까. 퇴근을 위해 저녁 준비로 부산한 주방에서 하얀 봄날을 은근 꿈꿔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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