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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 솥

by 김두선

부글부글 들렌다. 둥글넓적한 입에서 뿜어내는 더운 기운이 집안 구석구석을 후덥지근하게 달군다. 깨끗하게 삶겨 나올 빨래를 기다리는 동안, 몽실몽실 풀어 오르는 하얀 김이 아스라이 멀어져 간 세월을 물고 온다.


은퇴를 기다리며 뒤안길에 선 노인처럼 오늘따라 회백색으로 변한 그의 낯빛이 늙수그레하다. 오랫동안 우리 집 네 식구의 삶는 빨래를 담당하느라 힘에 겨웠나 보다. 가스 불 위에서 몸을 단련해 온 그의 몸무게는 1.2kg. 나와 함께 한 지는 삼십여 년이 되었으며 원래의 기능은 전기보온밥솥, 현재의 역할은 빨래 솥이다.


처음에 그는 내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유아들의 점심 한 끼를 담당했다. 쉰 명 남짓 되는 아이들의 밥을 매일 해 대느라 용을 쓴 탓일까. 뚜껑을 열면 이마엔 언제나 땀방울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오륙 년 지났을 때였다. 몇 번의 보수 끝에 어느 날 그는 밥 짓는 일에서 손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겉은 보아서 멀쩡한데 고장이라니...

아깝게 생각되어 손끝에서 놓지 못하던 나는 궁리 끝에 이것을 다른 용도로 부활시켰다. 큼직하고 실팍해 보이는 내장 솥을 따로 꺼내서 채소를 다듬거나 절이는 용도에 쓰기로 한 것이다.


어느 날이다.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주방 쪽에서 무언가 하고 있는 어머니를 보았다. 순간 나는 참으로 당황스럽고 어이없는 장면을 목격했다. 무좀을 치료한다며 그 내장 솥에 식초를 부어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이다.


“식재료를 씻는 그릇에 발을 담그면 어떡해요?”


“금속으로 만든 제품인데 뭐가 배어든다고 야단법석이냐?”


어머니는 미안해하기는커녕 당당하셨고 나는 그 대답에 경악했다. 나이 들면 느는 게 고집이라더니 잘못은 인정할 줄 모르고 오히려 당신 생각만을 우기니 시비는 계속되었다. 듣다못해 나왔던지

제 방에 있던 딸아이가 주방 쪽으로 급히 나오면서 나를 안방으로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할머니를 그만 닦달하라고, 이담에 내가 엄마한테 그러면 좋겠느냐고 다그치듯 말렸다. 그때 딸아이는 초등학교 육 학년, 열세 살이었다.


짐짓 민망도 하고 약이 오르기도 했던 나는 딸이 얄미웠다. 멀쩡히 다 듣고 있었으면서 내 편을 들지 않고 할머니 편을 들다니... 아무튼 그날 사건은 어머니의 한 마디 사과 없이 흐지부지 마무리되었고, 이후 내장 솥은 크기가 엇비슷한 스테인리스 찜통 뚜껑과 한 조를 이루어 빨래 삶는 그릇으로 또 한 번의 신분하락을 면치 못했다.



‘내로남불’이라고 했던가. 어린 딸의 말을 쉬이 인정하기 싫었던 엄마로서의 억지와 자존심. 그것은 바로 그날, 어머니가 내게 보인 행동과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을, 나는 시간이 훨씬 지난 다음에야 깨달아 알게 되었다. 이제 내 나이, 어머님 돌아가실 때의 나이를 쫓아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오늘 같은 날에는 그 먼 시간으로 되돌아가서 어머니에 대한 연민에 빠져들게 된다.



들썩들썩 들어 올려지는 뚜껑 틈새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야이야, 이 솥은 큼직한 게 빨래 삶기엔 정말 좋네!”

실수를 실소(失笑)로 바꾸려는 의도에서였을까. 어머니는 빨래를 삶을 때마다 한동안 이 말씀을 거듭하셨다.



금속의 본질은 변함없는 것이다. 굳고 단단하고 오래간다. 요즘처럼 조석으로 말을 뒤집고 자신의 유익에 따라 쉬이 입장을 바꾸는 세상인심을 생각하면 사람이 가져야 할 도리를 이것만큼 일목요연하게 가르치는 물질이 어디 있으랴.

어머니의 자식 사랑 또한 변함이 없다. 굳고 단단하고 오래간다. 머리가 커졌다고, 힘이 세어졌다고, 때로는 무람없이 부모를 대하는 부박한 딸이었지만 사시는 끝 날까지 어머니는 한 번도 나를 원망하지 않으셨다.



어머니를 그리듯 이모저모 그를 살핀다. 깜빡깜빡하는 내 건망증 때문에 빨랫감이 바싹 타도록 여러 번 엉덩이를 덴 흔적이 여실하다, 거뭇거뭇 눌어붙은 바닥은 쇠 수세미로 심하게 때밀이를 당하여 빗살 같은 상처가 현현하고 몇 번 내동댕이쳐진 탓인지 몸집 한쪽도 살짝 일그러져 있다. 그러고 보면 이 버거운 세월 속에서도 지금껏 견뎌온 뚝심 하나는 내 어머니 급(級)인가 보다.


손아귀에 쇠 수세미를 움켜쥐고 세제를 묻혀 문지른다. 불기운에 그을린 몸집이 조금씩 민낯을 드러낸다. 거뭇거뭇 여남은 자국은 지난한 역사를 지켜온 훈장쯤으로 인정! 노병의 기상으로 그가 존재하는 한, 해고는 앞으로도 없으리라.


잘 닦여진 그를 제자리에 올려놓는다. 벙긋이 웃는 어머니가 보인다. 찌푸린 미간을 펴 보이는 어린 딸의 얼굴이 겹친다. 부끄러운 날들이 알알이 그리움으로 표백되어 햇살 아래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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