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센티미터

by 김두선


“이리 오너라.”
“니가 오너라.”
하루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목소리가

빈 복도를 울릴 때면 대문을 사이에 두고 상면하는 우리 부부는 박장대소한다.

우리 집은 4층 건물 꼭대기 층에 있는 상가주택이다. 중문에서 현관을 지나 대문까지의 거리가 불과 4,5미터 남짓이어서 남편의 우렁찬 호령 한 번이면 방 안에서 다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소리를 질러대야 하는 이유는 건물 외벽을 타고 스며든 빗물 때문에 최근에 초인종이 고장 났기 때문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문을 여는 자동 시스템도 고장 난 지 몇 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고치지 않고 있다. 아이들이 함께 살 때에는 대문까지 일일이 나오기 불편하다고 아우성이었지만, 둘 다 서울로 유학(遊學) 간 이후에는 배짱 편하게 고치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아니 속마음을 털어놓자면, 버튼 하나만 눌러주면 알아서 들어오라는 식의 대문 인심이 왠지 야박하기도 하고 못마땅하게 느껴져 그대로 두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 집 대문의 풍경은 그 옛날의 대문 인심과 조금은 닮아 있나 보다. 솟을대문이 활짝 열리고 객을 사랑채로 인도해 가는 마당쇠의 뒷모습은 구경할 수 없지만 “이리 오너라.”하고 위풍당당하게 주인장을 불렀던 그때의 호연지기가 대문 앞에서 연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대문 인심은 시절 따라 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내가 자랄 때 살았던 우리 친정집 대문은 나무로 되어 있었다. 대문 안쪽 기둥에는 손바닥 길이만큼의 나무토막으로 된 빗장이 박혀 있었는데, 누구든지 바깥 편에서 손을 넣어 빗장을 돌리기만 하면 대문을 열 수 있었다. 동네를 지나다니는 걸인도 배가 고프면 들어와 어머님이 말아주는 국수 한 그릇을 손쉽게 얻어먹고 가는 집. 우리 집 대문은 경계를 표시한 말뚝처럼 그렇게 모양새만 지키고 있었다.



출가(出嫁)한 이후로 상가주택에 살기 전까지는 오랫동안 아파트에서 살았다. 맨 처음, 아파트라는 생소한 공간을 접했을 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장 좋고 편했던 것은 현관 앞에 바로 대문이 있다는 점이었다. 대문을 열어줄 때마다 불편하게 신발을 구겨 신지 않아도 됐고 추운 날 마당까지 나가는 수고도 덜게 되었다.

문 안쪽에는 한쪽 눈을 감고 바깥을 내다볼 수 있을 만큼의 작고 비밀스러운 구멍 하나가 있었다. 문을 열어주기 전, 방문객을 확인하기 위한 안전장치이다. 하지만 대문이 헐거운 집에서 살아온 내겐 무용지물이었다. 문을 열어두는 날이 더 많았으니까.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할 즈음, 대문에는 재미있는 변화가 하나 생겼다. 아이들만 있는 것이 염려되어 좁고 긴 U자 모양의 쇠 문고리를 부착한 것이다. 그리고는 아기돼지 삼 형제의 이야기처럼, 모르는 사람이 오면 절대 문을 열어주지 말고 문고리를 걸어둔 채 확인하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어느 날이었다. 모처럼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아파트를 진동시킬 만큼 큰 노랫소리와 함께 쿵쿵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지 쉽게 알아챌 수 없어 매번 참았는데 그 날은 몇 시간이 흘러도 그칠 줄을 몰랐다. 결국 소리를 더듬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굉음은 우리 집 두층 위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집엔 대학 삼수생 아들이 하나 있었다. 한창 팔팔한 나이에 책만 보자니 스트레스인들 오죽하랴 싶어 이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마냥 참고 있을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종주먹을 쥐고는 단단히 혼내 줄 요량으로 벨을 눌렀다.

안에서는 사태를 눈치챘는지 음악도 멈추고 조용해졌다. 연거푸 눌렀다. 한참을 기다려도 인기척이 없더니 바깥 기세에 눌렸는지 드디어 문이 열렸다. 대문에는 우리 집과 똑같은 문고리가 달려 있었는데 학생은 그 틈으로 내다보았다. 붉게 상기된 얼굴에는 땀까지 송골송골 맺힌 것이 광기를 발산한 느낌이 역력하다. 나는 해도 너무하다는 볼멘소리를 늘어놓으며 함께 사는 공동주택이니 이웃집을 좀 배려하라는 주의를 거듭 요구했다.

집에 돌아왔는데 불쾌감이 가시지 않는다.

쓴소리를 잘하지 못하는 편인데 역정을 내고 나니 그런가, 했는데 딱히 그 까닭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치한도 아니고 낯선 사람도 아닌데, 내가 말하는 내내 대문을 제대로 열지 않고 문고리 틈으로만 빼꼼히 내다보던 행세가 괘씸하고 언짢았던 모양이다.



우리 집을 방문한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세상살이가 하도 불안하고 팍팍하니 대문 인심도 날로 인색해지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아침저녁 마주치는 이웃에게까지 문고리 틈으로 내다보는 건 좀 심하지 않은가.

문득 우리 집 문고리에 눈이 갔다. 나는 벌떡 일어나 플라스틱 자를 들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문고리를 걸고 대문이 열리는 문틈으로 얼굴을 내밀어 본 다음, 문이 열리는 간격을 재어 보았다. 4센티미터였다. 안전을 기한다는 명분으로 설치하긴 했지만 열리는 대문 간격만큼이 바로, 이 시대의 세상인심이 아닐는지. 그 후로 나는

‘4센티미터’라는 대문 인심의 크기를 언제까지나 잊지 못했다.



얼마 전부터 반가운 일이 생겼다. 때 지난 ‘담벼락 헐기 운동’이 우리 동네에 이르러 유행처럼 번지게 된 것이다. 이웃과의 단절을 선포하듯 높기만 하던 담들이 하나, 둘 헐렸고 울타리 너머로는 눈인사도 오갔다. 낮이면 가오리연처럼 흔들리는 정원의 목 긴 꽃들이, 저녁이면 은은히 흘러나오는 플라워 스탠드 불빛이 궁벽하던 골목까지 따스하게 바꿔놓았다.


때마다 동네 한 바퀴에 눈 호강하는 즐거움이라니! 나도 4센티미터의 인심을 역행하는 우리 집 수동식 대문에 슬그머니 자부심을 걸어 놓다. 오늘도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고장 난 대문 앞에서 그이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겠지.


"이리 오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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