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사각 위에 단 한 글자도 마음을 풀어놓을 수가 없었다. 누군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밤낮으로 치료의 손길을 놓지 않고, 누군가는 삶의 터전을 잃고 망연자실하고 있다는데, 도무지 나눌 게 없어 보이는 자기 한계에 묶여서 그저 내 안만 관심하는 것이 못내 민망하고 편치 않다. 코로나가 준 선물(?)을 논하기에는 전 세계 상황이 주는 충격이 너무 심각하니까...
생각해 보니 내 주변이 편치 못하고 혼란 스러울 때도 글을 쓸 수 없지만, 내가 몸 담고 있는 사회가 복잡하고 안정되지 못할 때도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을 처음 깨달았다. 일상을 지켜갈 수 있게 해 준 올곧은 위정자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이 땅의 선한 모든 이들을 향하여 새삼 고마움과 연민이 느껴진다.
바람 불어 좋은 하루.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곳을 찾아 오랜만에 봄 나들이에 나섰다. 너럭바위와 아직 잎이 돋지 않은 나무들의 풍광이 작금의 세상살이만큼이나 스산하다.
세월을 건너는 것은 다 나름의 흔적을 가지는 것일까. 숲 속에 선 나무들이 우리네 삶만큼이나 그 모양새가 각각이다. 이처럼 오래도록 나무만 쳐다보았던 적이 없었더니.... 굵은 둥치, 가늘고 마른 둥치, 몸통을 비틀며 위로 기어오르는 둥치, 굵거나 가늘게 굽은 가지. 그리고 수피의 무늬나 색깔, 키, 잎 모양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저리도 한 결 같이 다른지!
어릴 적 스케치북에 그려냈던 나무를 떠올린다. 둥그런 원 하나에 초록색을 입히고, 갈색 막대기 하나를 세우고는 나무라 이름하던.... 저마다 개성 다른 저들을 도매금으로 넘기다니 얼마나 억울했을까. 마치 레디메이드 인생처럼 취급당한 것이.
바람이 분다. 솔 향이 코끝을 스친다. 너럭바위에 두 다리를 벋고 앉아 가지 사이로 일렁이는 바람의 소리를 듣는다. 미세 먼지도 피해 간 산중의 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