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띄엄띄엄

by 김두선

연만 한 시절로 접어들면서 자식들로부터 부쩍 잔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어느 날부터인가 상황반전이 일어난 셈이다.

'야무지다'는 내 아이콘처럼 알고 살았는데,

나더러 ‘대충, 띄엄띄엄' 이라니.


니들이 엄마를 알아?


터져 나오려는 한 마디를 식도 저 아래로 꿀꺽 삼키면 두 볼에 스치는 열기가 남은 억울함을 대신한다. 이 수긍할 수 없는 수긍을 동의하기

까지에는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도 몰랐던 자아를 들켜버린 불쾌감 같은...

자식들의 볼 멘 소리는 대책 없이 긍정적인 데다가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좋게만 여긴다는 내 처세론

에 근거했다. 말하는 대로 믿고, 좋은 일이라면 덥석 손잡아주고, 결과는 밑졌는데 필요해서 돌아오면 또 손잡아주고.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좋은 게 좋다고 대충, 띄엄띄엄...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고 제발 좋은 게 좋다는 착각은 버리란다. 그리고 요즘은 뭐 ‘지랄의 힘’이 대세라나?



여자의 일생이란 나이 들면 자식 시집 산다더니!

격세지감을 느끼지만 틀린 말도 아니다 싶어서 혼자 전전긍긍한다. '대충 띄엄띄엄'이

‘여백의 미’ 일 수도 있는데 말이지.

하긴 누구나 조금씩은 착각을 하며 산다니 나도 그 착각 속에 살았는지 모른다. 돌아보면 살면서 된통 당한 일이 없진 않으나, 그렇다고 손아귀를 꽉 움켜

쥐어서 남는 건 무엇인가. 결국 득실을 떠나 심하게 눌려진 자신을 빼내는데 집중했기 때문에 넘어서고 덮어주며 지금껏 잘 살아왔음이다.

그러니 또다시 부딪친다 해도 잘 넘어갈 것이고

잘 살아 테다. 착각 속에 빠진 자신에게 스스로 웃어 보이면서.



해묵은 옷에 뚫린 좀 먹은 자국처럼 숭숭 구멍이

나 있는 내 삶. 인정할 수밖에 없는 큰 허점이라 할지라도 나름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했다. 뭐랄까. 무조건 두 손 들고 항복하기엔 나도 지금껏 살아온 인생철학이란 게 있는데 말이지.



청년 시절, 나는 한 때 기타 광이었다.

이렇게 말하니 대단한 기타리스트인가 여기겠지만 부끄럽게도 천만의 말씀이다. 7080 시절 통기타 부대가 대유행이었을 때, 다섯 명의 친구가 뭉쳤다.

학교 가기 전 이른 시간, 기타 선생님을 초빙하여 배우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부모님께는 말도 꺼낼 엄두를 못 냈고 당연히 레슨비 마련은 더욱 대책이 없었다. 여자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선 안 되고,

저녁 7시만 넘으면 몽둥이를 들고 대문 앞을 서성이

는 아버지였다. 그런데, 감히 딸내미가 기타를 울러 메고 다니며 뚱땅거리다니. 그 뒷감당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고민하다 못해 생각해낸 것이 빨간색 세 글자가 적힌 ‘그 집’이다. 그리고 입학 선물로 받은 내 손목

시계는 쿵닥이는 심장소리와 함께 그날, 전당포에 고이 모셔졌다.



기타 없이 기타를 시작했지만 기타 과제를 연습하

느라 생각해낸 방법 또한 재미지다. 옷마다 윗도리 오른쪽 옆구리쯤에 여섯 개의 단추를 촘촘히 꿰매 놓고 피코를 쥔 모양으로 엄지와 검지를 맞모아 기타 치는 연습을 했다. 비록 단추가 부딪치며 달그락대는 소리였지만 얼마나 신이 나던지....

짜라짠 짜라짠 짜라, 흥얼대면서.




기타 배우는 일은 삼 개월로 짧게 끝이 났다. 손가락 힘이 약하고 손도 작았던 나는 어려운 코드 익히는 것을 포기하고 대부분의 노래를 C, F, G7 세 개로 해결했다. 물론 옥타브를 조절하면 D, G, A7 정도는 가능했지만 말이다.


그 시절 통기타는 젊음과 열정, 저항과 외로움의 상징이었다. 나는 주말이면 보헤미안처럼 기타를 둘러매고 자전거로 어디든지 떠났다. 하지만 통기타와 함께 했던 나의 젊은 날을 돌아보면 조금은 황당하고 민망하기까지 하다. 달랑 열 개 남짓한 기타 코드 실력으로 당당하게 기타를 메고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이런 걸 뱃장이 좋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어쩌면 어수룩한 기타 솜씨는 이제까지 허술하면

서도 단출하게 살아온 내 삶의 공식이 아닌가 한다.

잘 모르는 코드와 맞닥뜨리면 화음에 상관없이 슬그머니 손가락을 늦추고, 난이도 있는 음률이면 두 손을 모두 놓은 채, 빈 기타 통을 두드리며 박자를 맞춰 넘어가는―대충, 띄엄띄엄 방식 말이다.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은 은자의 삶을 이렇게 설파했다.


'열복(熱福)은 세상에 널린 것으로 누구나 바라지만 덧없으니, 많은 것을 가졌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더 채우지 못하여 늘 부족한 마음이다. 청복(淸福)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고 자족할 줄 알며 작은 것을 가져도 나눌 줄 아는 마음이 있으니 곧 은자만이 누릴 수 있는 복이다.'



청복의 삶. 하나씩 비워냄이 필요한 지금의 내 때에 새길 수 있는, 얼마나 멋진 말인가.

나는 앞으로도 이런 삶을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몇 개의 코드만 가지고도 부르고 싶은 어떤 곡조나 뽑아낼 수 있었던 내 허술한 기지처럼.


오랜만에 기타를 잡는다. 손놀림이 둔탁하다. 하긴 기타를 늘 가까이 두었다 해도 실력이 별로 달라질 건 없다. 몇 개의 코드면 충분하니까.


눈을 감으면 저 멀리서...


오늘 첫 곡은 '그 얼굴에 햇살'로 시작됐다.

코드는 C F G7으로. 그리고 아들딸이 뭐라든 나는 여전히 ‘대충, 띄엄띄엄’ 인생을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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