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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창국 Mar 14. 2019

인정과 믿음

19. 인정하면 대부분 해결되는 문제들

“나는 엄마를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엄마는 뭐든지 다 나보다 잘 해요. 나는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할 때 실수를 하지만 엄마는 한결같이 잘 해요.”

어린이들에게는 사랑과 이해가 수업보다도 더 절실하다. 그들이 타고난 착한 본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정과 자유가 필요하다. 진실로 강하고 사랑에 넘치는 부모라면 어린이가 착하게 자라는데 필요한 자유를 주어야만 한다.

나는 문제아라도 서머힐에서는 행복하고 정상적인 어린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런 어린이는 인정과 믿음과 이해로써 치유될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로버트가 새로 페인트칠을 한 내 방문에다 흙을 던진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나는 정말로 로버트에게 욕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로버트는 오래 전부터 우리 학교에 다녔기에 내가 욕을 해도 동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로버트가 미움으로 가득 찬 학교에서 갓 전학 왔고 흙을 던짐으로써 권위에 대한 투쟁을 시도하려는 것이었다면, 나는 그와 함께 흙을 던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를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미움을 모두 없애고 다시 사회의 건전한 구성원이 될 때까지 그의 편을 들어야만 한다.

어른들이 어린이들을 인정해주는 것은 곧 사랑을 뜻한다. 이와 반대로 꾸지람은 미움을 뜻한다. 우리 학생들은 나와 마찬가지로 선생님들도 항상 그들의 편이라고 느끼고 있다.

정직은 인정을 받는 데 대한 보답이다. 자유로운 어린이들은 인위적인 행동규범은 받아들이지 않고 어떤 금기에 의해서도 속박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위선적인 생활을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형벌과 감옥은 범죄자를 교화시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제도는 사회가 그를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기 때문이다. 그를 미워하는 사회는 그가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정신태도를 갖게 될 가능성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린다.

가정교육과 가정생활에 대한 나의 신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생활을 해 나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든 적용됩니다. 이런 생각에 의해서만 관용이 발전할 수 있습니다. 관용이라는 말은 자유로운 학교에 꼭 맞는 좋은 말입니다. 우리는 어린이들을 관대하게 대접함으로써 그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어릴 때에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하고 살았다. 내가 하는 행동들은 ‘당연한’ 것이거나 ‘잘못된’ 것이었다. 당연한 행동에 대하여 칭찬이나 격려는 없었다. 잘못된 행동에 대하여는 일정 기간마다 잘못에 대하여 체벌을 받았다.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은 매우 컸다. 마흔 살이 지나서도 어머니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머니 집에서 어머니 집에 고장난 것이나 손을 봐야할 부분이 있으면 “다 고쳤습니다.”를 두어 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린다. 옆에 있던 아내는 내 마음을 알아차리고 어머니께 “어머니, 다 고쳤다고 해요. 잘 했다고 한 말씀해주세요.”라고 하면 그 때에야 어머니가 “잘 했다.”라고 한다. 그러면 내 마음이 좋아진다.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인정을 거의 못 받아서 인지 어른이 된 나는 인정하고 격려하는 것에 매우 무디다. 하지만 인정이 용기를 만들어내고 활기를 불어넣는다는 것을 안다.   

  

 지우는 반장이었다. 영리한 아이였다. 말이 무척 많았으며 행동은 다소 불안하였고 가끔 실수를 하였다. 지우의 부모를 만났을 때에 지우의 불안한 행동의 원인이 ‘부모의 인정’ 부족에서 온 것을 알아차리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우 아빠는 인정을 해주면 지우가 말이 더 많아질 것이고, 더 행동이 요란해져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생각해서 틈만 나면 지우의 말과 행동을 그치게 하였다. 그래서 지우에게 필요한 것은 부모님의 지지이며, 인정을 받게 되면 말과 행동이 안정될 것이라고 조언을 했다. 그 이후 지우가 부모로부터 인정을 받았는지, 그래서 나아졌는지는 모르겠다. 나와 함께 있는 동안에 나는 지우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빠가 곱창을 요리하여 운영하는 음식점을 하는 창성은 학교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에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부모님은 네가 학과 공부를 안 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물어보면 “공부를 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하지만, 공부를 안 한다고 야단을 치지는 않아요. 저는 아빠가 하는 일을 물려받을 것이구요, 아빠도 그 일을 하는데 학교 공부가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시간을 내서 아빠 일을 돕고 있어요.”라고 한다. 이후 나는 창성을 볼 때마다 “곱창 요리 잘 배우고 있니?”하고 묻는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아이에게 필요하지 않은 학교공부에 관한 스트레스를 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성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에 공부를 더 잘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아이들이 창성과 같은 상황이 될 수는 없다. 물려받을 곱창 요리 음식점이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학교 공부를 잘 해야 나이 들어 생활을 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육십살이 된 나의 친구들을 보면 학교 다닐 때의 성적과 무관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할 일을 가지고. 한 때 나는 아이들의 성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여전히 어떤 아이에게는 성적이 중요할 것이다. 초등학교도 마치지 못한 신발 공장의 미싱사였던 어머니의 아들인 내가 학교 성적이 나쁘지 않아 대학에 진학하고 교사가 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신화는 많지 않다. 교육사회학에서 가난은 대물림되고 확대 재생산된다는 했다. 가끔 계층 상승의 신화들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어쩌다 일어나는 신화 같은 일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다고 했다. 학교 공부를 통한 대학 진학, 그에 이어지는 계층 상승에 거는 기대 때문에 거의 모든 부모들이 달려들면서 아이들은 비교당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한국사회에서 대학입학이라는 경쟁 체제가 사라지고 대학이 평준화 되어야 아이들은 인정받고 비교당하지 않으면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은 공부하는 기계가 아니다. 인간으로 성장하는 매 시기마다 겪는 어려움을 이해받고 사랑받고 인정받으면서 성장해야할 소중한 인간이다.     


전농중학교에서 생활지도부장을 하고 있을 때였다. 하루는 수업이 비어 있는 시간에 자리에 앉아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세 명의 아이가 내게로 왔다. 그 중 두 명의 아이는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수업시간에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나요?”

 “국어선생님이 선생님께 가서 지도 받으라고 했어요.”

 “내게 온 것 때문에 화가 났나요?” 

 “아뇨, 처음에는 복도에 내보낼 거라고 했는데, 갑자기 생활지도부실에 선생님한테 가라고 해서 화가 났어요.”

 “그랬구나.”

 “그럼 왜 교실에서 밖으로 쫓겨났는데?”

 “수업시간에 누가 종이를 뭉쳐서 제게 던졌어요. 그래서 날아온 방향으로 던졌어요. 그랬더니 다시 그쪽에서 날아왔어요. 그래서 다시 던지려다가 선생님한테 걸렸어요.”

 “그런데 왜 화가 났는데?”

 “저는 피해자에요. 그런데 함께 나가라고 하잖아요.”

 “너는?”

 “저도 피해자에요. 처음에 제가 시작한 게 아니고 얘기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래서 너희 둘만 화가 나 있는 거구나.”

 “승민이는 할 말이 없겠네. 문제가 너 때문에 시작된 거니까?”

 “예.”

 “마음 가라 앉히는 시간을 잠깐만 갖자.”

 시간이 약간 흐른 후, “지금도 화가 나니?”하고 물었다.

 “처음 보다는 화가 많이 가라앉았어요.”

 “그럼 두 사람은 교실에 가서 수업할 수 있겠니?”

 “예.” 

그렇게 해서 교실로 슬며시 밀어 넣었다. 수업을 마친 후에 국어선생님이 나에게 찾아와서 “갑자기 아이들을 보내서 미안합니다. 교실로 들여보낸 두 아이는 별다른 문제없이 그 시간을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감정과 상황을 살피고, 인정하고, 진심으로 이해를 하면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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