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창국 Mar 15. 2019

불안

20. 억압과 강요에 의한 불안-학교폭력

어린이의 불안 중 하나는 그들이 부모와 한 방에서 자는 데서 생긴다어린이는 네 살만 되어도 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보고 듣게 된다아빠는 엄마를 학대하는 나쁜 사람으로 비친다어린이의 사디즘(변태 성욕의 하나로상대방을 학대함으로써 성적 만족을 얻는 이상 성욕)은의 이러한어릴 때의 오해와 불안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소년은 자기를 아빠와 동일시하고 일찍부터 성적인 것을 고통과 연결시켜 버린다그는 불안에 사로잡혀 자기의 아빠가 엄마에게 했으리라고 생각되는 것을 상대방 여자에게 행하게 된다.

공포의 대부분은 어릴 때에 받은 벌에 대한 기억과 관련되어 있기도 하다우리 모두는 환상 속에서 살인을 한다만약 내가 다섯 살짜리 어린이의 소원을 짓밟아 버리면 그는 자기의 환상 속에서 나를 죽일 것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부모의 죽음에 책임이 있다고 느끼는 어른들을 알고 있다이런 불안은 자녀에게 야단을 치지 않고 매질도 하지 않음으로써 어린이들의 증오심을 일깨우지 않으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처벌이나 엄격한 벌이 아직도 남아있는 학교들은 어린이들에게 회복시킬 수 없는 큰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교사들은 벌에 대한 불안을 불러일으키지 않더라도 그들의 일을 잘 처리한다그렇지 못한 교사들은 학생들로부터 떼어놓아야 할 무능하고 해독을 퍼뜨리는 사람들이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한 가정은 부모가 도덕을 가르치지 않고 자녀들을 개방적이고 정직하게 대하는 가정이다이런 가정에는 불안이 없다아버지와 아들은 친구사이다그리고 사랑이 자랄 수 있다다른 가정에서는 불안 때문에 사랑이 파괴된다독재와 강요된 존경은 사랑을 멀리한다강요된 존경 속에는 항상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자유는 불안을 없애 준다나는 겁 많고 어린 소년이 겁 없고 힘센 사나이로 발전해 가는 것을 자주 보았다그러나 이런 것을 일반화하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왜냐하면 절대로 용감해지지 않는 내향적인 어린이들도 있기 때문이다한 어린이가 불안 없이 키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겁을 낸다면그는 이미 불안을 가지고 태어났을 가능성도 있다이런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어려운 까닭은 출생 전의 조건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이다임산부의 불안이 태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학급신문 편집회의에서 광성의 시를 싣자고 희명이 말했다. 희명의 말로는 광성의 시가 좋다고 했다. 희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광성의 시를 본 적이 없었다. 희명이 시를 가져왔다. 학급신문에 광성의 시가 실렸고, 해오던 대로 교실 뒷면에 학급신문을 게시했다. 다음 날 아침 광성의 시가 실린 지면이 오려져 있었다. 광성의 말에 의하면 자기에 대하여 알려지는 것은 자기에게 위험하다는 것이다. 광성은 어떠한 경우에도 내게 자신에 대하여 말하려 하지 않았다. 목사의 아들인 광성이 갖고 있는 불안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왜 위험을 예감하는 것일까? 광성은 자신이 필요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내게 와서 필요한 용건을 정확하고 불안해하는 기색이 없이 말하였다. 나는 그가 갖고 있는 불안의 원인에 대한 직접적인 관심을 갖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올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가 가진 불안에 대하여 알 수 없었다. 다만, 광성이 불안을 떨쳐낼 수 있다면 훨씬 나은 성장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광성의 불안에 대하여 들을 수 있는 시간은 오지 않았다. 


명훈은 수업 시간에 다툼을 하였다. 광일이 수업이 막 시작되었을 때에 다른 사람의 사물함을 열어본 것이 계기가 되었다. 명훈은 광일이 사물함에서 물건을 훔치려 하는 것이 나쁘다고 했다. 광일은 사물함으로 열어본 것이 훔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고 흥분을 하였고, 다툼이 되었다. 그래서 수업 중에 교실 뒤로 두 사람이 보내졌다. 여기에서 다툼이 더욱 커졌다. 광일이 홧김에 명훈을 때렸다. 이것이 학교폭력대책위원회 소집으로 이어졌고, 유월에 시작된 일이 팔월이 다 지날 때까지 이어졌다. 중간에 초등학교에서 명훈과 광일을 가르쳤던 담임교사가 자발적으로 와서 초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광일을 두둔하는 일까지 있었다. 명훈은 초등학교 때에 등굣길에 뒤에서 오는 아이들에게 우산을 휘두르면서 공격을 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유인 즉은 뒤에 오는 아이들이 명훈의 흉을 보면서 웃고 떠들었다는 것이었다. 뒤에 오는 아이들은 명훈의 얘기를 한 게 아니라고 했다. 부모는 명훈의 입장에서 명훈에게 가해진 여러 아이들의 욕설을 문제 삼아 학교폭력으로 처리를 원했다. 결국 등굣길의 모습을 담은 cctv영상까지 확인하기에 이르렀는데, 명훈이 걸어가다가 뒤를 돌아보면서 우산을 휘두르는 일로 시작된 아이들의 싸움이 담긴 것이었다. 부모는 영상이 뒤에 오는 아이들의 목소리를 담지 못했는데, 뒤에 오는 아이들이 명훈의 욕을 했다고 주장했다. 그 당시 이 일로 명훈과 광일의 담임교사가 애를 먹었던 일을 얘기하면서 명훈과 관련된 여러 건의 비슷한 사례가 있다고 했다. 명훈이 피해망상을 겪고 있다고 했다. 이 일은 학교장, 교감과 나에 대한 교육지원청 경고, 광일의 다른 학교 전학조치로 끝이 났다. 명훈의 피해망상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가 받았던 억압으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가 어릴 때 가졌던 억압과 공포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늘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명훈의 피해망상은 의심만 할 뿐 병원의 진료를 요구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억압, 그것을 통해서 갖게 되는 공포가 그런 현상을 만들었으리라 짐작할 뿐이다.     


대일이는 공부를 잘했다. 성적이 약간만 떨어지면 집에서 야구 방망이로 심하게 얻어맞는다고 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놀고 싶은 마음은 가득한 데 놀 수가 없었다. 성적은 좋았지만 늘 불안해하였다. 가끔씩 얼굴에 멍이 들어 올 때도 있었다. 놀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서 아버지한테 얻어맞았다고 했다. 시험 때마다 늘 긴장하던 그였다. 나는 대일이가 아직은 아버지에게 반항을 하지 않지만 나중에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랐다. 몇 년이 지나고 대일의 친구들은 대일이 아버지가 원했던 대학에 들어가지 못했고, 놀음을 하면서 폐인이 되어 있다고 전했다. 그가 받은 억압은 그와 그의 아버지가 원하는 것들을 모두 빼앗아갔다.     


억압과 강요는 아직 어릴 때에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순종하게 만들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음 속에 생겨난 억압에 대한 갈등과 심리적 왜곡은 성장을 방해한다. 때로는 여러 사람과의 관계 형성에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외딴 섬처럼 살아가는 삶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학교라는 공간은 억압과 강요의 다양한 형태를 경험한 아이들이 모인 공간이다. 그 속에서 오늘날 학교폭력이라는 풀기에 힘에 부치는 전혀 교육적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 늘상 벌어지고 있다. 교사들은 그 때마다 내가 그러했듯이 지쳐서 나가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봉중에 근무하고 있는 이순정 선생은 3년동안 학교폭력과 마주하면서 우울증까지 겪으면서 휴직을 경험하기도 했다. 아직도 그는 온전히 학교폭력 처리 때문에 겪은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있다. 학교에서 회복적 생활교육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가끔씩 벌어지는 아이들 사이의 갈등을 교육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인정과 믿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