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를 후불제라 부르는 이유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기로 결정하고 막상 수술 당일이 되니 겁이 났다. 수술은 오전 9시 30분에 잡혀 있었고, 수술 두 시간 전까지 병원에 오라고 안내를 받았다. 수술 전 날 생각이 많아져서 거의 밤을 꼴딱 새고 갔다. 유명한 네이버 맘카페인 '맘스홀릭 베이비'에서 제왕절개 출산 후기를 너무 많이 읽은 탓일까.
제왕절개 수술 전에 어떤 검사를 하고, 마취는 어떻게 하는지, 마취 이후 아기를 꺼내기까지 대략 몇 분이 소요되는지 등을 (후기를 통해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대략 알고 있어서 머릿 속에 수술 전후 일련의 과정이 그려지면서 "너무 아프면 어쩌지?"란 걱정이 산처럼 크게 몰려왔다.
항생제 테스트는 다른 시술을 하면서 두 번 정도 해보았는데, 이번에 했던 항생제 테스트가 유독 아팠던 것 같다. 물론 이것도 금방 고통이 사라져서 할 만했다. 이걸 포함해서 대바늘을 두 번 찔러서 조금 불편했던 것 빼고는 수술 전 준비는 순조롭게 흘러갔다.
자세 잡기가 쉽지 않다는 척추마취를 위한 새우등 자세는 의외로 나는 한 번에 잘 되어서, 간호사 선생님의 칭찬을 들었다. "더 구부려야 하지 않나요?" 라고 여쭤봤는데 이미 충분하다고 하셨다. 아마 태아가 작아서 나의 경우엔 구부리는 자세가 어렵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새우깡 봉지의 새우 그림처럼 최대한 내 몸을 따라 해보자는 마음으로 웅크린 다음에 무릎을 꽉 잡으면 된다. 그렇게 자세를 잡은 뒤, 척추마취가 잘 안 되어서 여러번 시도하고, 많이 아팠다는 글을 꽤 읽어서 각오하고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런데 마취과 선생님이 매우 친절하시고 기술도 좋으셔서,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수술방 간호사 선생님들도 옆에서 도와주시고, 자세를 잡아 주신다.
마취과 선생님은 "바늘이 얇아서 안 아플 거예요. 겁먹지 마세요. 잠깐 불편한 느낌 들고 말 거예요"라고 초산인 나를 거듭 안심시켜 주셨다. 실력자이신지 살짝 불편한 느낌이 나고 금세 다리에 약이 돌면서 마취가 되는 느낌이 났다. 그리고 감각이 없어졌다. 신기한 건 정신은 매우 또렷하고 상반신은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아랫 부분이 가려지고, 담당 산부인과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수술 시작하겠다는 싸인과 함께 배 가르기가 시작된다. 느낌은 없다. 마취를 했기 때문에. 다만 아기를 꺼내는 느낌은 느껴진다. 간호사 두 세명이 배에 몇 번 힘을 주니까 아기가 뿅!? 하고 나왔다. 보지 못했지만 10시 15분 조금 넘어 수술이 시작된 것 같은데 아기는 오전 10시 25분에 태어났다.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우렁찬 울음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아이가 나온 걸 모를 수가 없다.
마지막 진료에서 초음파상 몸무게가 2.23이라고 했기 때문에 혹여나 저체중아로 자가 호흡이 안 되면 어떡하나 수술 막바지까지도 걱정하며, 이를 놓고 기도하고 수술대 위에 올랐는데 효녀 배둥이는 5일만에 0.3키로 정도를 찌워서 2.6kg로 태어났다. 난 바로 "아기 몇 키로예요?", "자가 호흡은 잘 돼요?"라고 여쭤봤다.
마취과 선생님이, "지금 나와서 크게 울고 있잖아요. 그럼 숨 잘 쉬고 있는 거예요." 라고 정신없는 와중에도 매우 친절하게 답해주셨다.
남편이 들어와서 탯줄을 자르고, 내내 울고 있던 배둥이를 내 품에 안겨 주셨다. 그 때의 황홀감과 경이로움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눈을 예쁘게 감고 얌전히 내 품에 안긴 작은 생명체, 이 아기가 내 뱃속에 열 달 가까이 있었던 아기라는 게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이렇게 감격스러운 만남 이후, 나는 수면마취에 들어갔고 회복실에서 깨어난 후 첫 마디가 "우리 배둥이는 괜찮아요?"였다고. 마취가 완전히 깬 상태가 아니라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같은 날 수술한 분이 수술 대기하면서 내가 했던 말을 들었다고 나와서 깨자 마자 아기의 안부를 묻는 걸 보고 신기했다고 전해주셨다. 그 분은 회복실에서 깨자마자 "아, 이제 간장게장 먹을 수 있다"라고 하셨다고.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달고 있어서 그런지 회복실에서는 아픔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남편한테 "나 이정도면 둘 째도 낳을 수 있을 것 같아"라고 호기롭게 말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면서 제왕절개의 고통은 후불제 고통이라고 하는 이유를 뼈저리게 느꼈다. 장기가 쏟아지는 듯한 아픔은 아니였지만, 수술 부위가 '앜' 소리 나게 아려서 옆으로 편하게 돌아 눕지도, 몸을 일으키기도, 걷기도 힘든 아픔이였다.
그래도 둘 째날 오전 9시에 소변줄을 빼자 마자, 남편의 도움을 받아 아기를 보러 내려갔다. 아기가 너무 보고싶었다. 5분이면 갈 거린데, 통증이 어마무시하다 보니 남편의 부축을 받았음에도 병실에서 신생아실까지 거의 40분이라는 시간이 소요됐다. 그리고 신생아실에 누워 있는 배둥이를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상봉했다. 생각보다 거센(?) 통증에 정신이 아찔했지만, 아이를 보니 그 고통쯤이야 참을 수 있겠는데?라는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 마음이 든 것과 실제 통증이 심할 때 느껴지는 고통은 약간 별개같다. 그래도 많이 걸어야 회복이 빠르대서 남편의 도움과 함께 폴대를 의지하며 열심히 걸었다. 50시간 넘게 물포함 금식해서 매우 초췌한 몰골로 이를 악물고 걸었다. 한 번은 걷는데 갑자기 통증이 너무 심해서 눈물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터를 둘째날 저녁에 다 떼고 난 다음부터 더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삼 일째가 고통이 제일 심했던 것 같고 수술 4일차부터는 남편 도움 없이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몸을 침대에서 일으키기 까진 매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래도 장족의 발전이다.
매일 수술 부위 소독을 하고, 초음파로 자궁 상태를 체크하면서 5박 6일의 입원 기간이 무사히 끝났다. 퇴원하는 날에는 혼자서 평소 걸음의 3/4 수준의 속도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프긴 아프다. 그럴 때 처방 받은 진통제를 먹거나, 8시간 효과가 있는 엉덩이 주사(진통제)를 맞으면 괜찮아진다.
산부인과 같은 건물에 있는 조리원으로 층만 옮기면 되는 터라 수월하게 산후조리원으로 넘어온 지금, 수술 9일차를 맞이했다. 수술 일주일차인 일요일 저녁과 글을 쓰고 있는 화요일 저녁, 이틀 차인데 통증은 4-5배 넘게 줄어들었다. 이대로라면 이번 주말엔 거의 정상적인 컨디션을 회복할 거란 기대감이 든다.
어제 수술부위 실밥도 풀었고, 이젠 샤워도 머리감기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 많이 자유로워졌다.
다시 출산 전으로 돌아가도 나는 '제왕절개'를 선택할 것이다.
마취 깨고 무통주사빨이 사라지는 삼일차의 고통은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아프지만, 감사하게도 고통은 오래가지 않는다. 참을 만하다. 돌이켜 보니 그러하다.
배를 15센티 가량 갈랐으니, 아픈 게 당연하다. 수술이 시작되면, 눈에 보이는 배는 가로로 자르지만 안쪽 복근을 세로로 절개하기 때문에 기침을 하거나, 모유수유를 하며 자궁이 수축되면 여전히 불편한 느낌이 있다. 그래도 이 모든 고통이 새로 태어난 아기를 보면 사르르 잊혀진다. 뱃 속의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 이 정도(?) 고통은 감내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도 든다.
출산 후 한 달에서 6주까지 오로가 나오고, 상처부위에 연고를 바르고 겔 밴드를 붙이며 관리해야 하는 등 자연분만에 비해 신경써야 할 것도 많고, 통증 관리도 당분간 계속 해야 하지만 '시간이 가면 다 해결되는' 후불제 고통이다. 일주일에서 길면 2-3주 '참으면' 끝! 이 나는 고통이라는 점에서, 둘째를 갖게 된다면 그때도 제왕절개를 선택할 것이다.
아 물론 아프지 않다는 건 절.대.아.니.다.
하지만 겁 많은 나도 이 과정을 거쳤으니 당신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출산을 앞둔 이 땅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한다. 막달까지 제왕절개로 낳느냐, 자연분만으로 가느냐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이 글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