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주 6일 선택제왕을 하는 이유
나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일란성 쌍둥이의 둘 째.
엄마가 임신중독증이셔서 이른둥이로 태어난 나는 1.8키로로 태어나 인큐베이터에 한 달 있다가 나왔다고 한다. 다른 쌍둥이 반쪽도 2.1키로여서 일주일 간 인큐베이터 신세를 졌다.
뱃속에 있는 배둥이도 아마 나를 닮아설까? 우리 남편도 2.7키로로 태어나 남자치곤 작았다고 하는데, 유전의 영향인가? 엄마는 임신 전에 비해 정확히 10키로가 늘었는데 아기는 30주부터 머리둘레, 허벅지 길이, 배 둘레, 몸무게 등 초음파상 측정이 가능한 모든 크기와 수치에서 하위 20%에서 맴돌고 있었다.
소고기, 단 과일, 빵, 아이스크림, 밥... 일부러 찾아서 닥치는 대로 열심히 먹었다. 막달까지 입덧약을 달고 사는 산모임에도 토하면서도 먹었다.
34주에 1.67키로 35주에 1.89로 느는가 싶었는데 36주에 2.2키로를 찍고 37주 2일, 출산 전 거의 마지막 병원 진료에서도 2.2-2.3키로로 정체되어 있는 아기의 몸무게를 보니,
얼른 꺼내서(?) 밖에서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산의 경우 길게는 39주가 되어서도 아기가 나올 기미가 없으면, 방을 빼기가 어렵고 어떤 경우엔 40주 지나서까지도 안 나오기도 한단다. 그때까지도 이렇게 더디게 아가가 크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럴 경우엔 의사들도 저제충아에 들기 때문에 제왕해서 빨리 꺼내는 편을 추천한다고 했다. 마지막 진료때 하위 5%라고 말씀해주셨다. (흑흑)
그래서 자연분만이 아닌 37주 6일차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기로 했다.
자연분만을 선불제, 제왕절개를 후불제 고통이라고 한다던데
아이가 정상적인 범위 안에서 잘 자라주었으면 자연분만을 고민해봤을 테지만 배둥이의 경우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제왕으로 더더욱 맘이 굳어졌다.
물론 제왕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도 꽤 크다. 10년동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고질적인 허리디스크가 자연분만 과정 중에 악화될까봐 겁도 났다. 허리가 안 아팠던 산모도 진통이 허리로 오면 아기를 낳고도 1년 넘게 요통으로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거니와, 속골반을 둘째치고 겉으로 보이는 골반도 매우 좁기에 굳이 위험가능성이 있는 자연분만을 선택하기보다 허리 지키기에 보다 안전한(?) 제왕 쪽으로 처음부터 마음이 기운 것도 사실이다.
주변 친구들이 허리디스크나, 저체중아 등의 이슈가 없음에도 선택 제왕으로 낳은 케이스가 조금 더 많아서 제왕절개를 보다 편한 마음으로 선택하게 된 영향도 있다. 3월 19일, 제일 최근 제왕절개로 출산한 친구가 어제 "나는 생각보다 안 아팠어! 당일에도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이고 그 다음날부터 아파도 참고 걸을 만 하더라고, ㅇㅇ야 넘 겁먹지마"라고 카톡으로 갓 태어난 넘 예쁜 아기 사진과 함께 제왕절개 후기 소식을 들려줬다.
4월 1일 만우절, 오전 9시 30분. 제왕절개 수술 시간.
이제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내일, 수술 이후 무통과 페인부스터의 약효가 잘 들어서 본인 또한 친구처럼 제왕절개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노라고 후기글을 올릴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본다.
그리고 아기도 그동안 0.3키로 더 자라 있어서 2.5키로는 최소한 넘겼으면 좋겠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서 아긴 대학병원으로 가고 나는 출산병원에 있으면 넘 슬플 것 같다. 오늘도 아침을 거하게 먹고, 점심은 수제버거에 감자튀김, 핫초코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저녁은 스테이크로 마지막 반찬을 즐길 예정이다.
자연분만을 선택하든, 제왕절개를 선택하든 엄마의 임신과 출산 과정은 '거저' 이뤄지는 게 아니다.
두려움을 이기고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는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