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와르다 May 04. 2024

어버이날에 꽃 일에 대해 생각하다

생후 33일 아기를 키우고 있는 플로리스트의 일기


친한 샘이 그저께 밤 아홉 시에도 할 일이 많아 퇴근 못하셨다고 하시며 사진을 보내주셨다. 아, 시즌이구나. 작년 어버이날에는 꽃바구니를 몇 개 만들었는지 못 셀 정도로 꽃에 둘러싸여 보냈던 이맘때 생각이 나서 어버이날 컨디셔닝을 마쳐달라 아우성치는 한 방 가득하게 놓여 있는 꽃 사진과 지난 일 년간 나를 즐겁게 혹은 힘들게(?) 하기도 했던 꽃 사진들을 찾아봤다.


올핸 작년보다 꽃 값이 더 올랐다고 한다. 도매가는 시즌 때만 되면 고공행진을 하지만 소매가에 그대로 반영할 수 없으니 꽃 일 하시는 분들은 늘 같은 고민을 매년 할 수밖에. 제일 많이 듣는 말은 “풍성한 3만 원 꽃다발이요.”


하, 물가는 나날이 오르는데 꽃은 십 년 전 가격 그대로 사길 원하는 현실. 10년 전이 무엇인가 거의 20년 전 가격을 생각하시곤 꽃집에 들어서시는 분들도 꽤 많으시다. 예를 들어 꽃 한 송이 2천 원 정도?


고객님, 꽃시장에서 꽃집 사장들이 리시안셔스 한 단 떼오는 가격만 2만 원인데…

이렇게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이다.


꽃시장 도소매 분리는 여전히 요원하고, 시즌엔 꽃 가격이 어마무시하게 올라버려 절반 정도의 꽃집 사장님들은 최저시급도 안 되는 금액을 벌며 살아간다. 이는 최근 꽃사랑 커뮤니티 통계를 통해 확인된 사실이다.

이번 시즌이 평소에 마이너스로 근근이 꽃집을 이어오던 많은 사장님들에게 조금은 숨통 트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럼에도 꽃 만지는 일이 즐거워 속은 상하지만 사업을 계속 이어가시는 분들이 많다. 의외로 꽃일은 진짜 엄청난 육체적 노동이 들어가는 일이다. 새벽에 일어나 꽃시장을 가야 하고, 무거운 꽃을 이고 날라 가게에 와서 컨디셔닝을 마쳐야 한다. 양의 차이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기까지 보통 6시간은 걸린다. (주문이 적은 경우 최소 양으로 잡았을 때)


허리는 물론이거니와 손도 금방 망가지고 컨디셔닝 후 나오는 쓰레기 치우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그럼에도 꽃이 주는 아름다움과 누군가에게 아름다움을 전달할 수 있어 이 일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운 일이다. 포기할 수 없는 꽃 하는 행복함에, 33일 된 갓난아기를 키우면서도 소량의 카네이션을 주문했다. 내 방에 꽂혀 있는 카네이션, 거베라, 왁스, 카라, 루스커스, 소국을 보니 볼 때마다 마음이 환해진다.


출산과 동시에 내놓은 꽃집엔 예쁜 유리공방이 들어왔다. 공들인 인테리어가 아깝기도 하고, 무엇보다 꽃이 가장 빛나는 계절인 '봄'이 되니 꽃바람이 내 마음에도 훌훌 불어와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어버이날, 졸업식 등의 시즌이 되면 플로리스트들은 끼니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고 꽃에 둘러싸여 하루하루를 보낸다.

돌이켜 보니 그날들도 그리운 날의 기억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한 날들이 언젠가 다시 찾아와 주기를, 그때 감을 잃지 않게 눈으로라도 요즘 트렌드를 읽고, 꽃 하는 선생님들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도 종종 나눠보자고 다짐하는 이 새벽.


꽃보다 아름다운 우리 딸이 배고프다고 곧 깰 것 같으니 이만 이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이전 01화 식물 킬러에게 추천하는 '봄 꽃, 나무화분' 목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