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아서 Nov 18. 2022

내가 얼마나 못 달렸냐면....

    학창 시절 가장 끔찍했던 순간을 꼽으라면 중학교 2학년 때의 체력장 하던 날이 생각난다. 유난히 생활 체육 증진에 열 올렸던 체육선생님의 으름장에, 도어쩌구로 끌려가는 소처럼 무거운 발을 운동장으로 움직였다. 오래 달리기. 다섯 개 단어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절망적으로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의 매서운 호각 소리와 함께 신발 밑창이 아까운 줄도 모르고 드르륵드르륵 모래 바닥에 운동화를 끌며 억지로 출발했다. 매를 든 추격자를 피해 억지로 달리던 삼사십 명의 중학생들이 일으키는 먼지바람이 메마른 운동장에 가득 찼다. 운동장을 반 바퀴를 돌았을까. 숨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합기도며 수영이며 체중 감량을 목적으로 부모님의 억지로 시켰던 운동들은 달리기를 하는 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숨을 헉헉 몰아 쉬면서 애써 달려봤지만 중간쯤 이미 선두와 한 바퀴 이상 차이 났다. 목표를 달성한 아이들이 운동장에 주저앉아 마지막으로 남은 나의 초라한 달리기를 구경했다. 모두가 지켜보는 앞에서 포기할 순 없어 거의 걷는 속도로 끝까지 발을 굴렸다. 노력한 꼴등으로 들어오던 패배의 순간이 선명히 기억난다. 폐부가 찢어질 것 같았던 숨 가쁨은 선명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달리기와 나 사이에는 아주 넓은 간극이 있었다. 당연히 1분 이상 달려본 적이 없었고, 길에서 마주치는 러너들이 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하는 걸 보기만 해도 숨이 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와 저런 걸 하는 사람은 튼튼한 폐를 가지고 태어났겠지?' 하면서 내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운동의 영역이라 확신했다. 몸이 가볍고 심폐기능이 '태초부터' 좋은 사람만을 위한 운동인 러닝에 감히 나처럼 몸집이 크고 조금만 달려도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사람이 도전하다니. 말도 안 된다 여겼다.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던 러닝과 데면데면한 사이를 조금 극복하게 된 계기는 나처럼 러닝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일반인'인 친구가 러닝을 시작하면서였다. 일반인이 할 수 있는 운동이었어?! 놀라움과 동시에 갑자기 해볼 만한 운동 같아 보였다. 나이가 들수록 체력이 급속도로 저하되는 불안감과 집에 갈 때마다 높은 계단 앞에서 심리적 저항감을 느끼는 상황을 극복할 필요를 느끼던 참에, 친구가 한 번 더 러닝 해볼 것을 권해왔다. 마침 다이어트를 위해 헬스장엘 다니기 시작한 참이라 러닝 머신에서 아~주 가볍게 달리기를 해봐야겠다고 아주 갑자기 결심했다.


    그렇게 멀어 보였던 러닝과의 거리를 단숨에 좁힐 수 있었던 것은 러닝 가이드 서비스인 '런데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친구가 근 일 년 전부터 추천했는데 귓등으로 흘려버리다가 결심과 동시에 머릿속에 떠올랐다. '1분 달리고 1분 걷는 프로그램이라 할만해.'라고 하던 친구의 말을 믿고 다운을 받았다.

러닝 가이드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모바일 서비스, 런데이


    런데이는 인터벌 트레이닝을 통해 장거리 달리기를 훈련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시작 지점은 30분 연속 달리기를 위한 8주간의 트레이닝 코스이고, 이후로 30분 달리기 향상 프로그램이나 50분 달리기를 시도하는 프로그램 등이 있다. 어휴. 30분은 말도 안 되는 목표고, 3분이나 4분 정도 달리는 걸 목표 삼고 시작했다.


    첫 코스의 첫날의 훈련은 1분 달리기-2분 걷기를 반복해서 총 13분 동안 5분을 달리는 일정이었다. 아무리 달리기를 못해도 1분은 달릴 수 있겠지. 코웃음을 치게 만드는 가벼운 시작이었다. 1분 달리기. 너무나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돌이켜보면 모든 시작은 1분 달리기를 시도한 그 순간부터였다. 고작해야 1분씩 다섯 번, 총 5분 달리기를 완료한 그날에 나는 이미 10km 달리기를 완주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일을 해낸 것이다. 




    10km를 완주하고 나서 문득 어린 시절의 고통스러웠던 오래 달리기는 도대체 몇 미터였는지 찾아봤다. 그렇게 죽을 것 같았는데 최소 3킬로미터는 되었을 것이다. 30분은 고통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분명히.

서울대학교 스포츠과학연구소, 학생건강체력평가 메뉴얼


ㅎㅎ..ㅎ

    고작 운동장 대여섯 바퀴를 뛰고 그렇게 고통스러워했었구나. 어린 시절의 심폐지구력이 통탄스러움과 동시에, 꾸준히 달성한 장기간의 달리기 기록이 더욱 자랑스럽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한 거야!


    10km 코스에서 누군가를 응원하는 피켓 문구를 보자마자 지레 겁먹고 도망쳤던 많은 선택의 순간이 떠올랐다. 덩치가 커서, 재능이 부족해서, 돈이 없어서, 시간이 없어서 못 하는 줄 알았는데, 사실 안 한 거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앞에 더 넓은 가능성이 열렸다.




    8개월 남짓 러닝을 해오는 동안 훈련한 건 심폐지구력만이 아니었다. 안간힘을 썼는데도 전혀 진보하지 않은 것 같은 하루를 견디고, 까마득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노력하고 인내하는 힘을 길렀던 날들이었다. 


    이젠 꽤 멀어 보이는 목표를 향해 달리는 게 두렵지 않다. 해볼 만하게 느껴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멀리서 횡단보도 신호가 바뀌어도, 기차 시간에 쫓길지라도, 늦잠을 자도 두렵지 않다. 그냥 달리면 되니까! (음?)




표지 사진 출처 : Photo by Ketut Subiyanto: https://www.pexels.com/photo/fit-tired-sportswoman-jogging-in-sunny-park-4426457/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