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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Sep 05. 2018

대구의 밤

SSS의 HHH를 찾아서_ 도시밤 @대구


1


고스트북스에서 한참 동안 책을 고르고 난 후,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고스트북스가 위치해 있는 동성로 근처 작은 가게들은 유난히 각자의 개성이 뚜렷했다. 이름부터 로고, 컬러, 폰트까지. 대구에 오래 머물렀다면, 아마 하루에 한 군데씩 들러봤을 테다. 시간이 모자라 사진만 찍었다.





그중 DOSIBAM이라는 네온 글씨가 켜진 가게는 이제 막 문을 연 참이었다. 그 앞을 지나며 빔이 말했다.


"아, 이런 곳에서 술 마시면 좋겠다."


노숀은 지나가듯 말했던 빔의 한 마디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아니, 말보다 행동이 더 빨랐던 것 같다.


"가자."


이미 노숀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다.




2


건축에서 창은 두 가지 역할을 담당한다. 채광과 환기. 실내로 빛이 들어오게 하고, 공기를 통하게 한다. 주택 같은 경우에 집의 환경을 결정짓는 데에 채광은 굉장히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큰 창을 선호한다. 프라이버시만 침해받지 않는다면.


by 노숀


하지만 그것이 상업시설이라면 조금 이야기가 달라진다. 때로는 바깥의 풍경을 막고 내부에 더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특히 낮에는 문을 열지 않는 곳, 그러니까 술집이라면 채광을 위한 창은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도시밤은 아주 솔직한 방식의 창과 문을 택했다. 열릴 땐 열리고, 닫힐 땐 닫히는 창과 문이다. 극단적이지만 정직하다.


최대한 창과 문을 쪼개지 않고 큰 판으로 뒀다. 하나의 창을 제외하고는 유리는 쓰이지 않았다. 창에서 유리를 삭제한다는 것은 아마 호빵에 팥을 넣지 않기로 결정하는 것만큼 큰 결심이다. 대개 그런 선택지는 거르고 보니까.


by 빔


문을 활짝 열어 놓으니 답답하지 않다. 우리가 방문했던 때가 6월이니, 겨울이면 아마 닫아 놓겠다. 겨울을 위해 오른쪽의 창에는 유리를 달았을까?




3


우리가 도시밤의 입구에서부터 매력을 느꼈던 것은 두껍게 입구를 감싸고 있는 회색 철문 사이로 새어 나왔던 색의 향연이었을는지도 모르겠다. 도시밤은 내가 기억하는 한 색채를 가장 과감하게 쓴, 그것도 네온과 컬러 등까지 넘나가장 컬러풀한 술집이다.



입구를 들어오자마자 네온사인이 보인다. 절묘하게 도시밤에 첫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그 빛을 맞도록 걸어놨다. 의도한 것일지는 모르나, 외부와 내부의 경계를 아주 뚜렷하게 만든다. 붉은 한자라니, 홍콩이 떠오른다.



입구에서부터 바는 시작된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라 바가 길게 들어가고 나니, 공간이 모두 찼다. 입구에 걸린 네온사인의 현란한 색이 바로 그대로 투영된다. 빛의 색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인지 가구들은 모두 거친 무채색의 금속 재료들을 가져다 사용했다. 금속은 얇고 날카로우며 차갑지만, 빛을 많이 품는다.



도시밤 2층으로 올라가면, 색채의 의도는 더 본격적이다.



많은 색이 뒤섞인다. 취향을 많이 탈 것이다. 조명부터 가구까지, 거침이 없다. 겁이 없고, 그런 취향을 강하게 가진 디자이너였을 것이라 추측한다.

빛의 색을 많이 담아내는 마감재와 가구 재료를 사용했다. 1층에서 바와 장을 만들었던 금속 재질을 그대로 2층으로 올렸다. 금속으로 짜인 얇고 날카로운 가구들은 마찬가지로 색색의 조명들을 그대로 반사시켰지만 그들 자체로도 이미 색이 입혀져 있다. 조명 또한 같은 언어로 말을 한다.



창이 열리는 반대쪽 벽을 유광의 흰 타일로 마무리하자, 그 주변을 감싸고 있는 컬러 등의 색이 그대로 투영된다. 더 이상 흰 타일이라 볼 수 없다.


색을 비롯해 건너편의 어스름한 형태까지 비춰내는 타일과 강한 원색의 조명들은 왠지 모르게 자꾸 홍콩을 떠올리게 한다. 거침없이 달려드는 강한 개성의 것들이 충돌하여 만들어 내는 풍경이 닮았다.



오래된 건물이었다. 철근콘크리트로 2층까지 벽을 세우고, 지붕은 목구조로 마무리했다. 아마 리모델링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목구조가 리모델링 공사 중 천장을 뜯어내자 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한 공간 안에서 쓰이는 여러 재료들은 어김없이 충돌한다. 공간을 다루는 사람에게 그것은 언제나 풀어야 할 숙제가 아닐 수 없다. 도시밤에서는 상충하는 재료들을 색으로 잡아냈다. 이왕 쓸 것, 왕창 써보자는 마음이었을까.


솔직함은 언제나 강한 힘을 갖는다. 공간에서도 마찬가지. 이렇듯 망설임 없이 부딪혀 오는 의도의 공간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술을 마시면 우리가 그러하듯 속마음을 드러낸 솔직한 공간이다. 대구의 밤이다.





친구 빔과 친구 노숀과 함께 울산, 경주, 대구를 여행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공간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지라, 힙하고 핫하고 헤리티지한 공간을 찾아 즐기고 싶었어요. 우리의 여행은 그래서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어졌습니다. 'sss의 hhh를 찾아서' 시리즈의 글들은 그렇기 때문에 건축을 읽는 글이 아니라 공간을 기억하는 글이 될 것 같습니다. 편히 읽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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