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교황>, <스포트라이트>
친구가 될 수 있는 조건이 있다. 내가 가진 사고방식과 가치관에 반하지 않는 사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함께 옳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친구로 삼는다. 만약 사사건건 부딪히고 논쟁해야 하며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라고 한다면,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과의 관계를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나뿐만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그러리라.
그렇다면 세상을 바꾸는 방법은 또 무엇일까. 그것은 친구를 만드는 방식과는 정반대일 수 있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배척하지 않고, 뒤돌아 외면하지 않고 그들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손을 잡아보는 것이다. 넷플릭스의 영화 <두 교황>이 나에게 전한 메시지는 그것이다.
<두 교황>을 볼 기회를 노리고 있던 차에 내 친구 노숀이는 그보다 먼저 왓챠에 올라와 있는 <스포트라이트>를 먼저 보라 권했다. <스포트라이트>를 보고 난 뒤에 <두 교황>을 보고 나면 더 와 닿을 것이라며. 가톨릭에 대한 지식이라곤 중고등학교 때 세계사로 배운 지식밖에 없기에 기꺼이 연휴가 시작하자마자 <스포트라이트> 재생 버튼을 눌렀다.
<스포트라이트>는 2000년대 초반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행 사건들을 파헤치던 보스턴 글로브 기자들의 취재 과정을 그린다. 교회가 거대한 권위로 감추고, 교회를 거스르고 싶지 않던 세력들이 쉬쉬하던 사건들이 그제야 수면 위로 어렵사리 올라온다. 그때 큰 특종을 터트리고야 만 글로브지의 기자들의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기뻐하기는커녕 고개를 떨구고 씁쓸해하던 그 모습이. 세상을 바꾸는 일에는 오히려 믿고 있던 세계를 부정하는 경험이 함께 수반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두 교황>은 짧게 이어지는 장면들의 유쾌한 편집과 부에노스아이레스와 바티칸 시티의 대비되는 색감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영화다.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모습이 교차 편집되며 결국엔 흰 연기가 굴뚝 위로 피어오르는 전반부는 우리의 관심을 끌어당기고 눈길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추후 교황으로 선출되는 프란치스코가 나누는 대화들은 실상 현재 뉴스에서 내내 다루는 내용과 그리 다르지 않다. 이전의 방식을 고수하며 지킬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방법으로 위험을 감수할 것인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이다. 전통을 중요시하며, 변화에 거부감을 보이는 교황과의 좁혀질 수 없는 의견 차이에 숨이 막히다, 어느 순간 그들이 가지게 되는 교감을 바라보게 된다. 우정이라고도 이름 붙일 수 있을 만한 감정이다.
결국 2013년, 베네딕토 16세는 교황직을 사임한다. 성직자들의 아동 성추행 사건들을 포함하여 그가 외면했던 많은 문제들을 후회하며, 자신이 고집했던 방식과 지켜왔던 자존심을 내려놓고 새로운 교황인 프란치스코가 자신과는 정반대의 방법으로 새로운 교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침묵하며 지켜보기로 한다.
영화 내내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표정과 눈빛은 도대체 어디로부터 온 것일까. 사람들과 격의 없이 어울리며, 축구를 사랑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 사람. 그의 성정과 태도라면 이 세상의 다양한 면면들을 모두 마음으로 품을 수 있을 것만 같이 보인다. 그것이 아무리 극단적인 대립이라 하더라도.
그래서 마지막 장면이 뭉클하다. 맞는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두 교황이 맥주를 한 병씩 쥐곤 TV 앞에 앉아 월드컵을 관람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나라인 아르헨티나와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나라인 독일이 맞붙은 월드컵 결승전이다. 누가 이기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독일이 우승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모습에 탄복하지만, 내가 그렇게 될 자신은 솔직히 하나도 없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웃고 그들의 말을 진심으로 이해할 자신. 나는 아마 열변을 토하고, 똑같은 말을 반복하다가 화를 내고, 방방 뛰다가 씩씩거리며 그 자리를 피할 것이다. 만약 내가 프란치스코 교황만큼의 나이가 되면, 나는 그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잠깐 상상해본다. 못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