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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연결음이 울리는 잠깐의 시간

<전화>

by 선아키

뚜- 뚜-


통화연결음이 울리는 그 잠깐의 시간, 1분도 안 되는 짧은 기다림에도 나는 긴장을 한다. 받을지 혹은 받지 않을지, 받는다면 몇 번의 '뚜-' 소리가 지나서야 받을지 예상할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다. 마치 달리기 시합 전 건너편 결승 지점에서 선생님이 높이 치켜든 손끝을 바라보면서 다리에 바짝 힘을 주고 있는 기분이라고 하면 조금은 과장일까?


초등학교 때부터 나는 지속적으로 전화를 불편해했고, 특히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전화 통화를 해야 할 일은 질색이었기 때문에 배달 음식을 시킬 때면 괜히 민아(동생)에게 대신 시키곤 했다. 친구네 집에도 전화를 먼저 건 적은 드물었는데, 그건 친구네 부모님이 전화를 받으면 내가 떠듬떠듬 자기소개를 하고 친구를 바꿔달라고 말해야 하는 순간들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당연하게도 나는 장난 전화를 해 본 적도 없다. (아직도 장난 전화를 거는 심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행히 스마트폰이 나온 이후로 전화가 필요한 많은 경우들은 카카오톡이나 기타 서비스로 대체될 수 있었고, 이제는 민아에게 시키지 않아도 앱을 켜서 배달음식을 시킬 수 있게 됐다. 수화기를 붙잡고 어렵게 소리로만 설명하지 않아도, 사진을 보내거나 영상통화를 걸면 되니 소통은 더 쉬워졌다.



첫 회사를 다닐 적에는 업무 관련 연락이 그렇게도 어려워, 전화를 걸기 전에 노트에 빼곡히 할 말을 적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소수 건축사사무소 김선아라고 합니다.'로 시작하는 문장들을 짧은 대본처럼 썼다. 굳이 쓰고 읽을 필요 없는 회사 이름과 내 이름까지 적어두고 통화가 연결되면 우다다 대본을 읽었다. 상대방이 내 말을 잘 못 알아들을 때면 그게 내가 잘못 설명했기 때문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라도 상대방을 기다리게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마음이 급했고 언제나 허둥지둥 통화를 마쳤다.


회사를 다니면서 얼굴을 모르는 사람과 통화를 해야만 하는 일들은 점점 더 많아졌고, 이제는 그래도 꽤 익숙한 모양새로 전화를 받아낸다. 전화로 설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이메일을 먼저 보내 놓거나, 사진을 보낸다. 나에게 시간이 필요하면, 잠깐 기다려달라고도 말한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떨리지 않는다. 아마도 나의 전화 통화로 인해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들이 경험이 되어 축척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어느 정도의 불편함은 남아있는데, 각자 자리에 앉아 업무를 보는 사무실 안에서 통화를 하는 것은 아직도 편하지가 않다. 나만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전화 건너편 누군가와 나누는 대화의 절반이 사무실 사람들에게 들리는 것이 왠지 창피하다. 그래서 항상 자리를 피해 회의실이나 복도에서 전화를 걸거나 받고, 모니터를 보면서 이야기해야 할 경우에만 후다닥 사무실로 돌아가 통화를 이어나간다. 이것도 시간이 더 지나면 고쳐질까?



내 벨소리는 늘 진동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휴대폰을 어디 뒀는지 찾기 위해 전화를 걸어도 별 효과가 없는 경우가 많고, 눈앞에 휴대폰을 두고도 진동을 못 느껴 전화를 곧잘 놓치기도 하지만 그래도 진동 모드를 고수하고 있다. 내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큰 소리로 불쑥 벨소리가 울리는 것이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현장(나는 건축설계 일을 하고 있으며, 공사현장에서 여러 협의를 위해 나에게 전화를 건다. 보통 문제가 생겨서 오는 전화들이 대부분이다.)에서 오는 전화는 아직도 약간 외면하고 싶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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