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동 현장을 다녀와서
보통 건축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공사장을 먼저 떠올린다. 높은 크레인이 들어서고, 자재를 옮기고, 콘크리트를 붓고 점점 높아져 가는 건물을 연상한다. 사람들은 높아져 가는 건물을 바라보면서, 누군가는 매우 거칠다고 느낄 것이고, 또 누군가는 그것이 돈으로 보일 것이다. 비슷한 공정을 가지는 인테리어가 예쁘고, 아기자기하고, 세련된 느낌을 갖는 것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이미지 메이킹이 조금 잘못되어 있는 것 같다.
하여간 그 안에서 건축가는 무엇을 하냐면, 도면을 그린다. 빈 땅을 종이에 깔아 두고, 이곳에 어떤 공간을 집어넣으면 좋을 것인지 상상한다. 모형도 만들고, 3D 프로그램을 돌려 시뮬레이션도 하지만, 1차적으로 하는 일은 도면을 그리는 일이다. 아마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2D로 된 도면을 그리는 일은 계속될 것 같다.
때로 건축은 토론의 주제가 되곤 한다. 건축이 예술인지, 예술이 아닌지 하는 문제에 대해서다. 서양에서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건축은 예술이라고 말할 것이고,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급진적인 발전 때문에 예술의 면모라기보다 필요에 의해서 지은 건물들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건축은 예술이라고 선뜻 말하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건축이 예술의 면모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는 것이다. 100% 예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예술의 단면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래서 건축가는 디자이너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디자이너로써 학생 시절엔 우리가 쉽게 못하는 일이 있었다.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면, 자신의 디자인을 프린트해서 마주한다.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면, 자신이 만든 옷을 걸치기도 한다.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면, 기능을 갖추지는 못했어도 시제품을 만들어 본다. 가구 디자인을 전공하면, 마지막에 그 디자인 안으로 가구를 만들어 작품이 된다. 그런데 건축을 디자인하면, 우리는 만들어 볼 수가 없었다. 소문에 듣기로는, 어떤 학생은 졸업 설계로 건물 한 채를 지어서 크리틱을 받기도 했다던데 어쨌든 흔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내가 그은 선이 공간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나는 일은 결국 학생 시절엔 단 한 번도 없었다.
지난주, 목동 현장을 방문했다. 목동 프로젝트는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회사에 입사해서 처음으로 첫 순간부터 함께한 프로젝트다. 많은 양의 도면이 그려지는 모습을 보았고, 나는 그중에서 전개도를 맡아 그렸었다. 전개도는 학생 때 그릴 일이 없어서 낯설었는데, 말하자면 내부의 입면도 같은 것이다. 내부 벽에 무엇이 어떻게 들어갈 것인지 표시하는, 3D 모델링보다 바로 전 단계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목동 프로젝트 다락의 전개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점은 층고였다. 경사 지붕이 만들어내는 대각선의 천장이 과연 사람이 쓸 수 있을 정도의 공간으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냐. 가장 높은 점은 층고가 몇이고, 가장 낯은 점의 층고는 몇인지.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전개도를 그렸었는데, 지난주 방문했던 목동 현장에서 내가 그린 전개도가 실제로 구현이 되어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었다. 내가 마치 도면 속으로 빨려 들어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직 골조밖에 올라가지 않아서, 내부 마감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도 왠지 다 지어진 것처럼 뿌듯했다. 지금은 콘크리트가 밖으로 노출이 되어 있어서 걸터앉을 수도 없는 상태이지만, 조만간 창호가 설치되고 천장, 벽, 바닥에 모두 마감이 쳐지고, 조명이 들어올 것이다. 그럼 한층 더 좋은 공간이 될 것 같아 기대된다. 사건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치기 위해서, 팀장님은 매일 아침 출근을 현장으로 하고 계시다. 현장 아저씨들은 설계사무소에서 잔소리하러 매일 나와 조금 싫을 것 같기도.
학생 때에는 긋는 선 하나 하나마다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배웠다. 그때에는 뭘 또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여기는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더 많았다. 진지병에 걸린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더 그 말이 이해가 간다. 내가 긋는 선 하나가 바닥이 되고, 벽이 되어 눈앞에 턱턱 나타나는데, 한 번 그렇게 만들어지고 나면 대개 수정이 어렵기 때문에 한 번 그릴 때 잘 그려야 한다. 그래야 손해가 안 난다. 그래야 누군가가 고생을 안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