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시작
나의 하루 시작은 이렇다.
맨 먼저 아빠 차를 타고 회사 근처에 내린다. 회사까지 잠시 길을 건너 걷는다. 두 차례 길을 건너야 하는데, 그 5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출근길 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성수의 사람들은 많은 수가 자전거를 타고, 젊은 정장 차림의 신입사원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회사 건물 앞에 도착하면 3층 창문을 확인한다. 창문이 열려 있으면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다는 뜻이고, 창문이 닫혀 있으면 사람이 누군가 도착하여 에어컨을 켰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개 창문은 열려있다.
많은 공장이 입주해 있는 건물이라, 이른 아침부터 트럭이나 기계차들이 많다. 그 사이를 뚫고 잘 보이지 않는 입구로 들어와 계단을 오른다. 옛날 건물이라서 계단에 참이 없다. 가파르다. 3층 계단 앞 문에서 바로 회사 입구가 보인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간다. 출근은 보통 가장 일찍 하는 편인데, 퇴근을 마지막에 하진 않아서 문을 여는 것은 엄청 빠른데 문을 잠그는 경우엔 몇 번의 실패를 거쳐야 한다. 문을 정확한 위치에 놓지 않으면 도어락이 제대로 잠기지 않기 때문.
맨 먼저 신발을 벗고 맨발로 사무실 안으로 들어선다. 지금의 사무실을 좋아하는 큰 이유 중 하나. 실내 슬리퍼가 있지만, 카펫의 느낌이 좋아 요새는 맨발로 지내고 있다.
불을 켜고,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켠다. 요새는 망설임 없이 에어컨을 켜는데 보통은 32도에서 34도. 34도를 가리키는 에어컨 화면을 보면 기가 찬다. 벽의 1/2이 창문이고, 서향인 사무실이라 온실과 다름없다.
각자의 책상에 있는 컵을 수거해서 화장실로 가 설거지를 한다. 여자 화장실은 세면대가 넓어 설거지를 하기 편한 반면 남자 화장실은 세면대가 작아 설거지가 힘겹다. 아마 오래된 건물이라 몇 번의 화장실 공사를 거쳤을 것이다.
설거지를 하고 오면 컵을 정리하고 그라인더의 버튼을 누르고 커피를 내린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커피가 갈리기 시작하면 그것만으로 커피 향이 꽤 강하게 풍기기 시작한다. 그 사이 나는 여과지를 접고 뜨거운 물을 받는다. 커피를 내릴 때의 온도는 88도 정도가 좋다.
커피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곧바로 원두가 신선한지 아닌지 알게 된다. 머핀처럼 원두가 부풀기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계속 그 모양을 바라보게 되는데, 살짝 귀엽다.
커피를 내리는 동안은 커피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래서 좋은 커피의 맛은 그 사람의 정성과 분명 관련이 있는 것이다. 그 시간이 나의 하루가 시작되는 순간이다. 커피를 내리는 잠시 동안의 시간이 하루를 준비하는 시간이 된다. 커피와 함께 나의 하루를 여는 것이다.
2016년 8월 31일에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