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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Oct 18. 2021

돌아갈 곳이 결국 여기라는 것

<서울>


주변 사람들이 나와 다른 지역에서 나고 자랐음을 느끼게 되는 순간은 생각보다 사소하고 자잘하다. 가끔씩 사투리를 섞어 써서 내가 못 알아듣고 되묻게 될 때, 고등학교 시절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이 겪었던 야자의 추억이 나는 없을 때, 초고추장과 와사비를 섞어 회를 찍어 먹고 된장 양념장에 순대를 찍어 먹을 때. 그럴 때 나는 나와 다른 문화를 가진 지역의 이야기가 재밌고 흥미로워서 몇 번이나 되묻곤 한다.


특히 평생 먹어본 적 없는 다른 지역의 음식을 친구 덕분에 알게 되었을 땐 굉장히 즐거워서, 특정 지역을 지날 때면 먹어야만 하는 음식들이 생겼다. 이를 테면 나는 아직도 강원도에만 가면 물회를 찾아 먹고, 부산에 내려가면 밀면을 꼭 먹고 기장을 지날 때면 아나고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서울 음식이라 자신 있게 무언가를 소개해 줄 수 없어서 안타깝기만 한데, 서울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이 있었는지 다시금 떠올리려 해 봐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음식을 먹을 줄 모르는 서울 사람 취급을 받을 때면 왠지 그러려니 하며 수긍하고 만다.



서울 사람인 것을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때는 역시 명절인데, 구정이나 추석이 되어 서울이 텅텅 빌 때면 이상한 기분이다. 도로에 차는 없고, 가게들은 많이들 닫는다. 혼자 남은 기분이기도 하고, 공허하기도 하고. 어디론가 다들 바삐 떠나는데 나는 계속 그 자리에 있으니까, 괜히 혼자 집을 지키는 <나홀로집에> 주인공이 된 것 같기도 한 기분. 명절 전에 기차표가 풀리는 순간에도 나는 그들의 치열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야버스를 타고 내려가 새벽에야 집에 도착하는 경험도 해본 적이 없다. 집이 다르다는 것이 다른 경험을 하게 한다. 무엇이 더 좋다고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다르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회사를 다닐 때 만난 사람들은 나이가 들면 고향에 내려가 살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계속 살기는 힘들 것 같다고, 사람 사는 동네 같지 않다고.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다고. 나는 평생 살아왔던 곳인데 서울을 살기 힘들다 표현하는 사람들 앞에선 무어라 이야기를 해주어야 할지 조금은 어렵다. 어느 정도 수긍을 하면서도, 나는 서울을 떠나 산다는 것은 상상하기가 힘들어서 온전히 공감해주지 못했다. 나이가 들면 조용한 곳에, 원래 살던 곳에 돌아가 살고 싶은 기분은 무엇일까? 돌아갈 곳이 결국 서울인 사람들은 어떤 종류의 부재가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고향이라는 단어가 서울하고는 잘 어울리지 않게 느껴지기도 하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울이 계속해서 좋아서, 서울에 꼭 붙어살고 있다. 시끄럽고 복잡하긴 해도 그래서 새로운 것들이 계속 생겨나고 다양함을 품어줄 수 있지 않은가. 비록 어디 가서 자랑할 만한 음식은 없어도 서울은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을 쉽게 만날 수 있게 해 주었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으니까 살만은 하다. 왠지 서울 사람이라고 가끔 친구들은 나를 깍쟁이 취급할 때도 있는 것 같긴 한데(졸리다고 말할 때 그리고 '하니?'라고 물을 때) 그것마저도 난 조금 재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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