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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부분 Oct 18. 2021

사람들의 도시

<서울>

나의 이십 대를 서울에서 다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십 대 때 조용한 편이었던 나의 활동반경은 그렇게 넓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서울까지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잘 없었다.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나 음방에 참여하려고 서울을 간다는 몇몇 친구들은 좀 어른 같아 보였지만 나는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고, 이런저런 일들로 부모님이 서울에 가시면 꼭 한밤중은 되어야 돌아오셨기 때문에 나에게 서울은 뭔가 특별한 일이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는 인상이었다.


제대로 기억하는 첫 서울은 밤의 모습이었다. 딱 십 년 전 이맘때였는데 우리 집 세 모녀는 무려 '무박' 2일로 서울 여행을 떠났다. 무박 여행도, 제대로 된 서울 여행도 처음이었지만 저녁에 무작정 서울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특별한 일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가서 뭘 하자고 정해 놓은 것도 없었다. 엄마는 엄마가 알고 있는 서울의 몇몇 지명을 꼽아 우리에게 가고 싶은 곳이 있냐고 물었고, 우리는 전에 들어 본 적이 있는 곳을 가자고 했다. 동대문이나 명동 같은 유명한 곳들은 다녀와서 누구에게나 자랑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엄마는 이전에 서울에 왔을 때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들려주었다. 우리는 지도를 자주 들여다보며 한밤중의 서울 구석구석을 쏘다녔다. 서울의 밤은 대전의 밤에 비해 아주 밝고 북적거렸다. 오래 지나 순서는 좀 뒤죽박죽이지만 술 마신 사람들이 비틀거리던 명동 밤거리의 차가운 공기, 24시간 카페의 2층 테라스, 동대문 시장에서 산더미 같은 옷 더미를 짊어지고 다니던 사람들, 어디인지 기억나지 않는 아쿠아리움, 이른 새벽 양재동의 꽃시장 냄새 같은 것들이 선명히 떠오른다.


동대문에서 산 점퍼와 양재에서 산 해바라기를 들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잠을 잤다. 고등학교 3학년을 눈앞에 둔 시기에 잘 가지 않던 서울을 가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특별한 일이긴 했지만 직접 가서 본 서울은 특별한 이벤트의 장이라기보다는 살아가는 사람들의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건물도, 일도,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살아가는 곳. 다양하고 밀도 있는 공기가 떠다니는 곳. 밤낮없이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혹시라도 서울에 있는 대학을 가게 된다면 참 바쁜 사람들 속에서 살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십 년 남짓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서울에서 술을 마시고, 공부를 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이제는 새벽의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대신 매일 아침 한강을 가로질러 출퇴근을 하며 서울의 사람들을 구경한다. 서울은 예상했던 것처럼 바쁜 곳이었다. 모든 게 다 크고 빠르고 똑똑하고 정신없는 도시. 시골쥐 같은 나와 성질이 맞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을 보낸 만큼 고맙기도 하고 정이 간다. 이제 내 짐보따리는 서울에 다 있고, 오래 보고 싶은 사람들도 많아졌다. 서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도 하나둘 발견해 나가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앞으로의 십 년도 또 서울에서 지내게 될 것 같으니, 도시 쥐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보면서 서울의 매력을 더 찾아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서울을 제2의 고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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