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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진킴 Oct 18. 2021

여전히 낯설고 무서운 애증의 도시

시니컬하지만 가진 게 많은 파트너 <서울>


처음과 시작


내 기억 속 첫 서울은 언제였더라.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는 어릴 적이었다. 청와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경복궁을 구경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중학교 땐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보러 두어 번 서울에 갔던 적이 있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 탐방을 목적으로 서울대에 견학을 갔었다. 당연히 서울대는 못 갔고, 그때 갔던 잠실야구장이 기억에 더 오래 남아있다.



그리고, 8년 전, 나는 이제 서울에 잠시 왔다가는 방문객이 아니라, 서울에 터를 잡고 살아가야 할 사람으로서 다시 이곳에 왔다. 대학 입학식을 앞둔 2월 말, 이미 좋은 방은 다 나가버린 후라 내게 남은 선택지는 정말 몇 없었고 그때 봤던 모든 원룸들은 내가 지냈던 그 어떤 방들보다도 작았다. 그중 하나를 골라 후다닥 계약을 하고, 후다닥 이사를 했다. 침대에서 일어나 서면 바로 앞에 싱크대가 있고, 거기서 한 발짝 움직이면 화장실이 있었다. 이사를 하고, 처음으로 자취를 시작한 날, 그러니까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날, 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혼자 밥을 먹으며 펑펑 울었다. 나는 이 도시가 너무 낯설고 무섭고 서러웠다.


내게 더 이상 안락한 집은 없었으며, 밖에 나가면 어디에나 사람들이 우글우글했다. 꼬불꼬불한 지하철 노선도는 10개가 넘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주 상냥한 말씨를 가지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바닷가에 갈 수 없었고, 거리에 횟집도, 돼지국밥집도, 밀면 가게도 없었다.



서울이라는 화분


뿌리를 내리기가 참 힘들었다. 나는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누군가 나의 일부를 동강 잘라내어 서울에 던져놓은 기분이었다. 나는 살아야 했으므로 뿌리내릴 곳을 찾아야 했다. 물속에 있는 듯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 들기도 했고,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휘둘리며 날아다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드디어 여긴가 싶어서 뿌리를 내리려고 하면, 하필 찾은 곳이 돌덩이 바위산이라 좌절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이런 우여곡절을 겪으며 적당한 터를 찾았고, 옅게나마 땅 속에 뿌리를 내렸다. 혹여 비바람이나 폭풍우에 뿌리가 뽑힐까 싶어 악착같이 붙어 있었다. 결국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나고, 재밌는 일도 하고,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며 취향도 차곡차곡 쌓았다. 고향에서 좋고 튼튼한 뿌리를 만들어 놓은 덕에 [서울]이라는 화분에 옮겨와서는 적당히 가꾸어도 쑥쑥 자라나고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가 나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나는 여전히 이 도시가 낯설고 무섭고 서럽다. 하지만 예전만큼은 아니다.


처음 마주한 서울이라는 도시는 내 생각만큼 나를 따뜻하게 반겨주지 않았다. 참 시니컬한 도시였다. 세상은 혼자 사는 것이라는 걸 스파르타식으로 훈련시켜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덟 번의 사계절을 겪고 나니 이제는 이 도시를 내 나름대로 다룰 줄 알게 되었다. 시니컬하지만 가진 건 많은 친구라 곁에 두어 나쁠 건 없었다. 폭풍우가 와서 나를 뿌리째 뽑아가지 않는다면, 좋은 파트너로서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내가 서울에서 20년쯤 살다 보면, 이곳에 애정을 느낄 수 있을까. 살다 보면 언젠가는 시니컬한 냉기가 아닌, 미적 지근한 미온이더라도 온기를 먼저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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