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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19. 2021

사색을 위한 사계절

atin maru

사색을 위한 숲


숲의 한가운데에서는 도시에선 느낄 수 없는 다른 종류의 바람이 분다. 바다에서 짜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숲은  도시에서는 맡을 수 없는 향을 뿜어냈다. 들이마시는 것만으로도 초록을 직접 삼키는 것 같았다. 바람이 불자 숲에서는 철썩철썩 파도가 부서지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높게 솟은 나무들의 잎사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의 몸에 부딪혀 내는 작은 소리들이 모이고 겹쳐 파도가 되었다. 숲은 또 다른 종류의 바다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매일은 아니더라도 이따금씩 숲이 필요하다. 어떤 거창한 목표를 이루거나, 어떤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보다, 오히려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어서일 테다. 아마도 곧게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에 잠시나마 기대고 싶어서가 아닐까. 아틴마루는 이곳에서 머무는 하루 동안 사색을 권한다. 숲을 아주 가까이 두고, 문밖을 나서면 바로 숲 속인 곳. 봄여름가을겨울, 계절의 이름을 빌린 네 개의 동 사이를 산책할 수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순서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이름을 붙였다. 건물이나 집이라고 이름을 붙이기엔 작아, 사람이 겨우 거처할 정도로 작게 만든 집을 뜻하는 캐빈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려 보인다. 컨테이너와 비슷한 사이즈의 캐빈은 숲 속에 파묻혀 있지만, 빛을 반사하는 재료인 골강판을 외장재로 썼기 대문에 멀리서도 쉽게 눈에 띈다. 마치 거대한 초록 배경 사이로 콕콕 반짝이는 점을 찍어놓은 것과 같다.



오르막을 오르기 위해 S자로 길을 내어 캐빈과 캐빈 사이를 연결해주었다. 4개의 동을 다닥다닥 붙여 놓았으면 오래 걷지도 않고, 관리를 하기에도 편했을 텐데 아틴마루의 캐빈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려 서로 멀찍이 떨어져 있다. 아마 서로 간의 거리를 확보해 프라이버시를 챙기는 동시에 각자만의 숲을 온전히 즐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아틴마루를 감싸는 20분 거리의 산책로를 걸었다. 편한 신발을 신고 빨간 깃발을 따라가면 된다는 조언대로 아틴마루의 숲으로 걸어 들어갔다. 입구와는 다른 높이와 각도에서 아틴마루의 전경을 돌아볼 수 있었다. 숲 속에서 발견하게 되는 은빛 캐빈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모두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는 노란 불빛과 그림자가 다른 캐빈 속 사람들의 존재를 알려주었다.




좁은 틈 사이로 들어오는 숲의 세계


숲과 가까이 있기 위해서, 캐빈은 커질 수 없었다. 공간이 커지면 건물을 지탱하기 위해 단단한 구조와 기초가 필요해졌고, 기초를 만들어야 한다면 땅을 파헤쳐야 했다. 사람이 향유하는 공간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숲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꼭 필요한 만큼의 넓이만을 사용해 숲 사이로 파고들어야 했다. 그래서 캐빈은 하룻밤을 지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기능을 압축해 최소한의 넓이만큼만을 사용한다.



작은 공간 안에 많은 기능을 부여하는 일은 테트리스와 비슷한 맥락으로 이루어진다. 빠르게 떨어지는 블록들을 가장 적당한 곳에 끼워 넣어야 하는 것처럼 침대와 테이블, 화장실과 현관 위치를 옮겨가며 퍼즐을 풀어간다. 아틴마루의 캐빈에 처음 들어가며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짐을 내려놓고 박수를 쳤다. 군더더기 없이 아주 깔끔하게 풀어낸 평면이어서, 흡사 공장에서 제작하는 완성품과 같은 느낌을 풍기기도 했다.



현관과 실내는 구분 지을 수 있도록 중문을 두었다. 짐을 들고 들어오는 데에 무리가 없도록 넉넉한 넓이의 현관은 옷장 역할도 겸한다. 화장실은 세면대와 샤워실, 변기를 모두 건식으로 구분해 분리했다. 화장실은 얇은 커튼 한 장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공간을 구분 짓는 데에 큰 무리는 없다. 아마 좁은 실내를 가로지르는 두꺼운 문짝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캐빈의 내부는 모두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숲을 중심으로 한다. 숲을 바라보게 하는 테이블 아래는 모두 나무 합판을 마감재로 썼다. 숲과 이질감 없는 재료로 실내를 구분하자, 시선은 더욱더 창문 밖의 숲으로 향한다. 그것을 위해 가로로 긴 창의 프레임을 모두 숨겼다. 유리 한 장은 초록빛을 그대로 투과시킨다.


캐빈 내부의 하루는 모두 액자처럼 걸린 숲을 바라보며 지나간다. 간단히 저녁을 사 와 테이블에 앉아 먹을 때에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에도 모두 바람에 흩날리는 초록 잎사귀들을 바라볼 수 있다. 해가 모두 지고 나서 깜깜한 저녁이 되고 나서야 숲은 자취를 감추고, 캐빈의 내부는 모두 개별적으로 조도를 조절할 수 있는 간접조명에 의해 밝혀진다. 조명마다 조도를 조절할 수 있는 디밍 장치를 설치했다는 것은 각자의 편한 조도를 찾아 사색을 즐기라는 뜻었을 것이다.




풍경을 담는 여백의 공간


네 개의 캐빈의 시작점에는 규칙적인 그리드를 가진 콘크리트 건물이 하나 우뚝 솟아있다.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여 마치 창문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건물. 체크인을 하는 공간이자, 조식을 먹을 수 있는 곳. 그리고 저녁이면 영화가 상영되는 아틴마루의 라운지였다.



하나의 길쭉한 창문을 제외하곤 사방이 막힌 내향적 캐빈과는 다르게, 라운지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뚫려 있다. 처음에는 라운지 내부를 보여주기 위해서인 줄 알았는데, 라운지 안으로 들어가서야 알았다. 라운지는 아틴마루를 둘러싼 풍경을 내부로 들이기 위해 벽을 없앤 것이었다.



리셉션이 있는 라운지의 1층을 지나 계단을 올라 2층으로 올라오면 건물 내부로 아틴마루의 캐빈들과 뒷산을 배경으로 하는 풍경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바깥을 바라보기 위해 내부는 최대한 비워냈다. 잠깐 앉을 수 있는 스툴과 벤치를 제외하면 콘크리트 본연의 질감과 색깔을 그대로 노출한 채 공간은 비어있다.


라운지의 2층 공간에 조금 더 머물고 싶었다. 비어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가능성들이 있다. 거대한 숲의 병풍을 두른 것과 같은 공간에서 작은 공연이나 전시, 행사가 열리면 비움의 힘이 극대화될 것이다. 공간을 채우고 있는 음악을 들으며, 좋은 콘텐츠가 함께하는 공간이 되길 잠시 바랐다.




리바트 웹진 <힌지> 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yundailivart.co.kr/community/magazine/B200035646?typeCd=00002&sortBy=rgstd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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