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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아키 Nov 19. 2021

한 장씩 쌓인 벽의 의미

호시담

대지에 순응한다는 것


현대 건축의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주택이었던 낙수장(Falling Water)은 이름처럼 폭포 위에 지어졌다. 수평의 테라스가 폭포 위를 지나고, 주택 아래로 폭포수가 떨어져 내렸다. 모든 방에 커다란 테라스를 두어 외부의 자연환경을 바로 마주할 수 있게 했고, 거실에서 폭포로 곧장 향하는 계단을 두어 건축과 자연 사이 동선을 이었다. 


만약 주택을 짓고자 하던 땅에 폭포가 있지 않았다면, 낙수장은 지금의 모습으로 설계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름부터가 낙수장이 아니었을 것이고, 오늘날까지 오래도록 회자되는 건축 작품으로 손꼽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건축은 땅에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담양의 호시담에서 문득 저 먼 미국 땅의 낙수장이 떠올랐다.



땅에는 언제나 성격이 있다. 땅이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는지, 주변은 어떤 환경적 요소를 가지고 있는지. 경사진 땅이라면 어느 방향으로 대지가 기울어져 있고, 또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 건축은 땅과 온전히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땅의 성격은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고 조건이 된다.


호시담이 위치한 담양의 대지는 담양 시내를 바라보고 있는 경사지에 위치한다. 남쪽을 바라보면 규칙적으로 세워져 있는 전봇대와 S자로 마을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 그리고 마을을 낮게 감싸고 있는 산세가 펼쳐진다. 호시담은 경사가 져 있는 땅을 모두 파헤치거나, 지하를 깊게 파서 더 넓은 개발을 하거나, 그게 아니라면 조금이라도 더 높게 올라가 멀리 보고자 하는 노력을 하지 않기로 한다. 호시담은 대지에 순응하기로 했다.



호시담은 경사를 따라 차분히 몸을 낮춘다. 호시담의 여섯 객실은 가장 높은 곳에서부터 차례로 한 채씩 계단처럼 경사를 따라 내려온다. 딱 한 층씩 몸을 낮추니, 멀리 서는 호시담의 모습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원래 이곳이 가지고 있던 풍경을 해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면서 저 멀리 무등산의 모습을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한 장씩 쌓인 벽의 의미



호시담의 중심에는 경사진 잔디밭 정원이 자리한다. 여섯 객실은 이 잔디밭을 만들기 위해 중심에서 멀어졌고 정원의 경계에는 객실의 벽들이 세워졌다. 투숙객들은 내부에서는 이 공동의 잔디밭 정원을 바라볼 수 없지만, 그 때문에 객실에서 나오는 순간 뻥 트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정원을 통해 이동하며 햇빛을 마음껏 받고 저 멀리 무등산의 그림자를 눈에 담는다. 건물이 지어지기 전부터 이곳에서 자라고 있던 나무는 베어지지 않았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원의 경계를 두른 벽은 한 장 한 장 벽돌로 쌓였다. 한 손으로 들어서 간격을 맞추고 풀 역할을 하는 시멘트 몰탈을 발라 한 장 한 장 쌓는 벽돌은 똑같은 벽의 역할을 하는 데도 콘크리트나 금속과 달리 차갑지 않았고, 사람을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어디론가 사람을 이끄는 힘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햇빛을 받으면 자연과 어우러졌고, 따뜻했다. 아마 벽돌이 흙에서부터 온 재료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호시담의 여섯 객실은 모두 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객실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벽을 마주해야 한다. 미로처럼, 벽과 벽을 사이에 두고 길을 따라 들어가면 객실 만의 작은 정원이 나왔다. 벽 뒤로 숨어 있어 본격적으로 벽을 돌아 들어서기 전에는 알아채기 힘든 공간이었다. 여섯 객실이 큰 잔디밭의 정원 하나를 공유하듯, 함께 호시담에 머물며 향유할 수 있는 우리들만의 정원이 나타났다.




건축은 태초부터 벽을 세우는 일이었다. 광활한 땅에 바람을 막을 수 벽을 세워야 공간이 분리되고, 그제야 비를 막을 수 있는 지붕을 덮을 수 있었다. 얼마만큼의 공간을 남겨두고, 어디를 막을 것인지 고민하는 것은 건축을 만드는 가장 첫 번째 단계였다. 내부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 벽을 세웠지만, 벽이 모여 외부 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호시담에서 벽은 많은 역할을 한다. 실내 공간을 만들지만, 동시에 잔디밭 정원을 규정한다. 벽은 사람들이 움직이고 이동할 수 있는 길이 되고, 공간과 공간 사이의 작은 틈새가 되기도 했다.



나에게도 정원이 있다면


사적인 외부공간을 갖는다는 것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나만의 정원을 가진다면 나는 그곳에서 어떤 일들을 하며 시간을 보낼까. 누군가는 아침마다 커피를 들고 나와 조용히 밝아지는 햇빛을 만끽할 것이고, 또 누군가는 테이블 위로 맛있는 음식들을 잔뜩 들고 나와 친구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는 모두 도심의 아파트에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막연한 동경이고, 또 즐거운 상상에 그칠 만한 이야기지만 호시담에서는 현실이 된다.



벽을 돌자마자 마주하게 되는 작은 정원은 바깥에서 보이지 않도록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호시담 바깥 공간으로 뚫린 벽돌 벽 사이로 볕이 가득 들었다. 4명이 모여 앉기 좋은 사이즈의 테이블이 놓여 있어, 원한다면 저녁에 바비큐를 구워 먹을 수도 있었고, 아침으로 갓 내린 커피와 빵을 먹기에도 좋았다. 아이들이 있다면 한참이고 잔디밭 정원과 내부 정원을 몇 번이고 뛰어다녔을 테다.



실내에서도 정원을 즐길 수 있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ㄱ자로 꺾인 실내 공간은 문이 없이도 꺾인 각도만으로 침실과 거실을 구분해냈다. 주방에서는 정원을 바라볼 수 있었고, 거실에 뚫린 창을 통해서는 남쪽의 무등산 풍경이 보였다. 침실과 이어진 화장실에서도 정원으로 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이곳엔 땅에 파묻힌 욕조가 존재했다. 벽으로 막혀 바깥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천장이 뚫려 빛을 맞으며 노천탕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실내 공간은 모두 정원을 중심으로 배치되었다.





담양의 고즈넉한 하루를 즐길 수 있는 호시담에서는 작년부터 바로 옆에 카페를 오픈했다. 몸을 낮추고 수평적인 공간을 구현해 냈던 숙소동과는 다르게 카페 호시담에서는 마치 산의 모양을 닮은 박공지붕을 올렸다. 숙소처럼 벽을 사용해 길을 만든 것처럼 이곳에서도 콘크리트 벽을 세워 사람들을 인도한다. 계단처럼 단이 진 수공간을 건너, 콘크리트 바닥 사이 박공지붕의 빗물을 받아내는 자갈 길도 뛰어넘어, 목재로 마감된 천장까지 만나니 이곳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을 한 줌씩 건물에 심어둔 것처럼 느껴졌다.




리바트 웹진 <힌지> 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yundailivart.co.kr/community/magazine/B200036541?typeCd=00002&sortBy=rgstd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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