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선아키 Dec 03. 2021

온전한 휴식을 위한 선택과 집중

의림 여관

온전한 휴식을 위한 선택과 집중


오래전 읽었던 동화 중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유리병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예쁜 구슬들이 탐이 난 원숭이는 손을 넣어 구슬을 빼내려고 하지만, 한 번에 많은 구슬을 가지고 싶었던 원숭이가 주먹 가득 구슬을 움켜쥐자 유리병의 좁은 입구에 막혀 구슬을 꺼내지 못하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만약 구슬을 하나씩 빼내었다면 여러 개의 구슬을 가질 수 있었을 원숭이의 과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교훈을 준다. 한 번에 많은 것을 가질 순 없으니,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의림여관의 목표는 명확하다. 여관을 방문해 하룻밤의 시간을 보낼 투숙객들이 춘천의 산자락 아래에서 온전한 휴식을 취하고 떠나길 원한다. 분명한 목표가 있으니, 의림여관은 단호한 선택을 이뤄낸 것처럼 보인다. 500평이 넘는다는 대지 위 가늘고 길게 자리 잡은 콘크리트 건물에는 객실이 단 두 개뿐이다. 그마저도 최대 2명이 입실할 수 있으니, 500평 안에는 오직 4명만이 머물 수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한꺼번에 방문할 수 없는 대신, 이곳에 머무는 투숙객은 의림여관과 주변 자연환경을 오롯이 누리게 된다. 의림여관의 산새를 따라 흐르는 공기와 따스히 건물 안쪽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모두 이곳에 하룻밤 머무는 나그네의 것이다.




공간의 기승전결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 보면, 어느 순간 느낌이 온다. 곧 어떠한 사건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다. 주인공은 위험에 처하고 갈등을 겪었다가 위기를 넘기고 결국 극복을 해야 한다. 소설과 드라마 그리고 영화는 모두 그러한 기승전결의 순서를 따른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행복하기 시작하면 물론 주인공에게는 좋은 일이겠지만, 독자와 시청자들은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쉽지 않다. 시나리오는 모두 마지막 순간 주인공이 누리는 행복과 감동을 향해 천천히 사건들을 쌓아 올린다.


공간도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기승전결이 존재한다. 특히 보여주고 싶은 장면과 사람들로 하여금 느끼게 하고 싶은 명확한 경험이 있다면 더욱더 기승전결은 분명해진다.



의림여관의 가장 바깥 대문을 통과하기 전까지, 건물의 모습은 바깥에서 쉬이 보이지 않는다. 도로보다 높이 자리한 대지 속에 몸을 감추고 있는 건물은 대문을 지나 돌계단을 몇 단 올라서야만 겨우 모습을 드러낸다. 북쪽을 향한 기다란 콘크리트 건물이다.



어떻게든 눈에 띄려고 외장에 많은 것들을 붙이고 조명을 쏘아대는 도시의 많은 건물에 비해서 의림여관은 결이 완전히 다르다. 묵직하게 땅에 내려앉아 소리 없이 자연을 관망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건물이라기보다 벽과 같은 모습의 콘크리트를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붉게 녹슨 문 앞에 서게 된다. 마주하게 되는 두 번째 문이다.



실내를 상상하며 거대한 붉은 문을 열었지만, 아직 열어야 할 문이 하나 더 남아있다. 붉은 문을 열고 들어선 공간은 대문과 같은 소재인 열연강판으로 둘러싸여 있고 하늘이 뻥 뚫린 외부 현관이었고, 오른쪽으로 실내로 그제야 진입할 수 있는 유리문이 보였다. 곧바로 실내로 진입할 수 있게 하는 대신, 하늘이 뚫린 외부 현관을 통하게 하고 문의 방향마저 바꿔 경험의 속도를 느리게 한다.



유리문을 열면 의림여관의 거친 콘크리트 외장과 대비되는 따뜻한 나무 소재의 벽과 천장이 투숙객을 반긴다. 투박하게만 보였던 건물 안쪽에는 훈훈한 공기가 맴돌며 따뜻한 빛을 가득 품은 침실이 자리한다. 침실은 벽, 천장과 같은 나무 소재의 합판을 사용해 바닥에서 일정 높이만큼을 들어 올렸다. 벽 없이도, 문 없이도 공간 구분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침실과 반대쪽 숨겨져 있는 나무 슬라이딩 도어를 열면 건식으로 공간이 나누어져 있는 화장실이 보인다. 특히 침실에서처럼 바깥을 향해 훤히 열린 창을 가진 욕실에서는 마치 노천을 즐기는 것처럼 욕조에서 반신욕을 즐길 수 있다.



침실에서도, 욕실에서도 그리고 주방에서도 다른 방향을 바라보지 못하고 한 방향으로만 시선이 쏠린다. 다른 세 면을 포기하고 남쪽의 산새를 향해 창을 두어 투숙객은 계속 내부 공간과 연장되듯 마련된 작은 마당을 바라보게 된다. 



이곳이 목표지점이었을 것이다. 산자락 바로 아래, 자연을 코앞에 두고 즐기라고 의림여관은 굳이 굳이 계단을 오르고 벽을 따라 몇 개의 문을 열고서 이곳에 도달하도록 했다. 해가 뜨고 지며 느껴지는 숲의 시간과 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의림여관은 내부에 들어서야만 그 진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추방된 주방, 휴식을 위한 단절


공간은 기능에 의해 나누어진다. 가장 기본적으로 집을 돌이켜봐도 그렇다. 자는 공간인 침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인 거실, 그리고 씻는 공간인 욕실. 마지막으로 음식을 준비하고 먹는 주방. 집은 이러한 공간들이 벽과 문으로 간단히 구분된다. 편의를 위해서다.


그러나 여관이 꼭 집과 같을 필요가 있을까. 의림여관이 보여주고 있는 휴식을 위한 단절은 어쩌면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을지도 모른다. 쉼을 위해 도시에서 뚝 떨어진 춘천에 자리하게 된 것도, 외부의 소음과 빛을 막기 위해 세워진 콘크리트 벽도, 극적인 차경을 위해 딱 한 방향에만 창을 낸 것도.



더 나아가 의림여관은 주방을 분리한다. 주방은 객실과 이어진 마당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바로 옆방이다. 같은 마당을 공유하고 있지만, 내부에는 문이 없어 투숙객은 반드시 외부 공간을 통해야만 주방으로 진입할 수 있다. 



추방된 주방의 단점은 분명하다. 문을 열어 찬 공기를 맞아야만 하고, 신발을 신고서 주방의 닫힌 문을 열어야만 한다. 하지만 주방에서 어떤 음식을 해 먹든, 그 냄새가 침실에까지 도달할 가능성은 적다. 오히려 활짝 폴딩도어까지 열면 주방은 반 외부 공간으로 변모하기도 한다. 얼마나 거한 저녁 식사 시간을 가졌든, 깔끔하게 다시 휴식의 공간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주방을 단절시킨 공간 구조의 장점이다.



펜던트 등과 스탠드로 아늑하게 밝던 공간이 햇빛에 의해서 눈 부시게 환해지는 아침이 오면, 브런치를 먹을 시간이다. 의림여관에서 준비한 브런치를 먹으며, 온전한 쉼이 가득 찼던 의림여관에서의 하룻밤을 되돌아본다. 눈이 소복이 내리고, 숲이 잠드는 겨울이 오면 그때 다시 하룻밤을 보내러 의림여관을 찾을 것이다.




리바트 웹진 <힌지> 에 실린 글입니다. 아래 링크를 통해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hyundailivart.co.kr/community/magazine/B200037538?typeCd=00002&sortBy=rgstdtime


매거진의 이전글 한 장씩 쌓인 벽의 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